세계태권도연맹이 국제심판업무 관련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업무비리에 대한 자체적인 해결 노력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일 경찰이 세계연맹에 대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단행함으로써 세계연맹 사태는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 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경찰수사착수설이 실제로 압수수색이라는 형태로 표면화됨에 따라 경찰수사착수 배경과 향후 파장에 대해 태권도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만약 세계연맹이 이번 사태에 대한 수습 노력을 소홀히 할 경우 세계연맹의 세계 회원국들에 대한 지도력과 권위의 손상은 물론 태권도 자체 이미지에 막대한 손상을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

세계연맹은 경찰수사와는 별도로 상벌위원회를 구성해 사태를 조속히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경찰이 수사를 개시한 현 시점에서 세계연맹 상벌위원회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측도 있다.

세계태권도연맹 국제심판관련 사태를 조사하고 있는 서초경찰서 전경.

압수수색에 대한 의문점

경찰이 세계연맹에 대해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단행한 이유는 다각적인 측면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우선, 지난달부터 시작된 자체 진상조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등으로 세계연맹은 사태를 해결할 의지를 표명하면서도 조사기간이 지연되는 등 수습 노력의 적극성을 인정받는 데 실패한 것이 경찰이 압수수색을 단행한 가장 결정적인 배경으로 보인다.

경찰은 지난 2일부터 공문을 통해 국제심판 자격시험 관련서류 등을 요구하며 세계연맹에 협조를 요구했었다. 이에 대해 세계연맹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가 끝나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표명하면서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경찰의 압수수색은 해당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을 포착한 뒤 관련 제출자료들을 확보하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을 때 법원에 영장을 발부받아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경찰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연맹의 국제심판관련 업무에 관한 문제점을 구체적인 부분까지 파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세계연맹은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발생할 파장에 대한 적절한 대처방안도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경찰 압수수색은 연맹에서 공식적인 경로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경찰에 제공한 인사의 투서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의혹도 있다. 세계연맹의 경기 심판에 관련된 업무는 연맹 출입기자들도 파악하기 힘들고 특별조사위원들 조차도 애로사항을 토로할 정도로 복잡한 행정시스템에 의해 진행됐다.

따라서 세계연맹 사무처 내부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인사가 사무처 헤게모니 확보 수단으로 직접 정보를 제공했거나 외부인사를 통해 단서를 간접적으로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사태에 따른 파장과 대책

세계연맹 국제심판관련 비리사태의 결과는 경찰 압수수색으로 인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할 정도로 확대된 상태다. 태권도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파장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여론이다.

현재 올해 국제심판선발 관련 작업, 주니어선수권대회와 월드컵단체대항대회 등 각종 대회준비, 전자호구 공인 작업 등 경기 심판부가 추진해야 할 일들은 산적해 있지만 서류 일체와 컴퓨터까지 경찰에 압수돼 정상적인 업무를 진행할 수 없는 상태여서 이로 인한 업무차질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또한 국내 언론이 세계연맹 비리사태의 진행 방향를 자세히 관찰하고 있고, 아직 이렇다할 반응은 없지만 해외에서도 이번 사태를 인지하고 있어 외신들의 보도는 시간문제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외신이 본격적으로 이번 사태를 다루게 될 경우 세계연맹의 회원국에 대한 권위나 지도력의 손상은 물론 해외에서 활약 중인 한인 지도자들의 활동에게 막대한 타격이 예상된다.

이와 함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강력한 정보취득능력을 감안해보면 시한부 올림픽 잔류로 겨우 한숨을 돌린 태권도 종목의 위상과 미래에 닥칠 위험과 파장 규모는 가늠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가 사무처 헤게모니 다툼에서 비롯됐다고 가정한다면 경찰 수사과정에서 연맹 관련자들 간에 폭로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어 향후 상황은 더욱 나빠질 수도 있다.

만약 경기 심판부 외에 다른 부서까지 조사가 이뤄져 문제가 확대될 경우에는 단순히 세계연맹 내부의 일이 아닌 태권도 전체의 문제로 일반인들에게 비쳐질 공산이 크다.

세계연맹은 현재의 경찰 조사를 지켜보면서 자체적으로는 상벌위원회를 구성, 부정 사건에 대한 관련자들을 처리하고 심판제도개선위원회를 조직해 행정시스템을 보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상벌위원회 자체가 무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관련자들이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서를 오고가며 조사를 받는 시점에서 상벌위원회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세계연맹이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초기 대응이 미흡해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세계연맹은 조정원 총재와 문동후 사무총장을 비롯한 사무처 전 임직원이 머리를 맞대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서라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홍철 기자  wtk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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