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 다시 루마니아를 갔는데 헝가리 인접도시인 쿠르주나포카에 운동을 가르치러 가기 위해 언제 도착 할지도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다 지쳐 기차를 포기하고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하고 공항에 나가보니 시골 간이역 같은 곳에서 프로펠러 비행기에 엔진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물어보니 엔진이 열을 받아 물을 뿌린다고 했다. 어떻게 저런 비행기를 타고 갈지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태권도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또 태권도에 미치지 않았다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학생들이 내가 부담했던 항공료를 주겠다고 공항에서 기다리라고 하여 비행기 떠날 시간이 다 되도록 기다렸건만 결국 나타나지 않아 그냥 돌아온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만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태권도는 배우고 있은데 돈이 없어 못 배우는 안타까운 수련생들을 매정하게 거절하지 못해 흘려보낸 9년의 세월이었다.

또 따른 나라 몰도비아(Moldovia)는 원래 루마니아에 속했었지만 2차 대전으로 분리된 동구권의 아주 작은 나라인데 그곳에도 발을 디디게 된다. 하지만 몰도비아 역시 가난한 나라여서 학생들의 사는 형편을 보면 딱하기 짝이 없는데 집안에 들어가면 냄새가 역해서 들어가기가 망설여질 정도이다.

태권도만 가르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것들이 않아 헌 띠며 헌 도복을 모아 전해주기도 했는데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태권도 보급을 위해 노력을 한 결과 루마니아와 몰도비아에 태권도가 있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시드니 올림픽 개최 직전에 태권도 세계연맹과 KBS가 공동 제작했던 ‘서울에서 시드니까지’라는 특집 다큐멘터리중 ‘한국이 보인다. 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 학생 체육관과 우리 집도 소개가 되어 직접 출연하면서 협조를 해주었다.

시드니 올림픽에서 그리스선수가 금메달을 따냈으며 4년 이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그리스는 은메달을 2개나 획득하여 그리스에서 보낸 30년 세월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결승전때 한국의 문대성 선수와 그리스 선수의 경기에서 문 선수의 멋진 KO승으로 막을 내렸던 장면은 너무나도 유명한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올리는 모습을 보며 그리스에서 내 인생의 반을 보냈고 그리스가 나의 삶의 터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쩔 수 없는 영원한 한국인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감사하게도 2004년 12월31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였다.

2006년 7월 26일부터 31일까지 베트남 세계주니어 대회를 마치고는 한국 가까이 왔는데 그리스로 금방 돌아가는 것이 아까워 서울에 살고 있는 아이들도 볼 겸 제 1회 세계 품새대회도 보고 가려고 행선지를 서울로 정했다.

2006년 8월 베트남 세계주니어 대회 직후 서울에 와서 친구의 병문안을 갔다가 이제는 나이도 먹었으니 꼭 건강진단을 받고 가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는 해외에서 30년 이상 살아오면서 뭐가 그리 바빴는지 한 번도 받아보지 못 했던 종합검진을 받게 되었다.

이틀을 금식하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검사를 받았더니 상상도 못했던 대장암이라는 진단이 떨어졌다. 정말 충격이었다. 누구나가 마찬가지겠지만 나한테 닥치기 전에는 남의 일로만 여겨졌던 암이라는 녀석이 나에게도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게 모르겠는데 머릿속이 텅 빈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이루어 놓을게 없어 초조해지기도 했다. 일단 수술 날짜를 잡았으니 수술부터 하고 다음은 또 닥치는 대로 하면 되지 않겠나, 수술 후 항암치료가 더욱 고통스럽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것도 경험을 안 했으니 알 턱이 없고 이제는 암이란 녀석과의 대련을 준바하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정비해야 할 차례인가보다. 작년 10월 한국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고 지금은 많이 호전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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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헌기 사범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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