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서울올림픽 성화 봉송 자원봉사를 하며 있었던 일들이 기억난다. 서울에서 전세기를 같이 타고 아테네에 도착하여 기체 밖으로 나가니 우리나라가 북한과 대치상태여서인지 삼엄한 경비 병력이 배치되어있었다.

그 삼엄한 분위기 중에도 많은 무장 경찰들이 나에게 경례를 하자 동행기자들이 깜짝 놀라며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 했다. 그래서 세계 어느 곳이든 태권도사범에게는 경례를 한다고 농담을 하다가 실은 내가 그리스 아테네 상주사범이고 내 제자들이라고 이야기하자 그제야 이해를 하고 역시 태권도 사범은 대단하다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서울의 올림픽 유치를 기뻐하며 도우미를 하다 보니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개의치 않고 감당해 낼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임원들이 성화 봉송 안전램프를 비행기에서 가지고 내리질 않아 발바닥에 땀띠 나도록 급히 공항으로 달려갔던 일, 아테네에서 올림픽 성화 채화 장소였던 올림피아까지 가면서 있었던 기억들.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같은 모습으로 채화를 하고 오륜을 그리던 그리스 여인들이 펼쳤던 아름다운 광경이나 한인들이 보면서 즐거워하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여 잊을 수 없는 나의 소중한 추억들이다.

자동차에 대형 태극기를 꽂고 올림피아에서 아테네까지 450킬로를 달릴 때의 모습이 상상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 한국인이라는 자부심과 작은 나라 한국이 올림픽을 치를 수 있을 만큼 경제나 모든 면에서 성장을 했다는 뿌듯한 마음에 이루 말 할 수 없이 기뻤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목덜미 아래로 감격의 눈물 같은 그 무엇이 벅차게 흘러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991년에는 제 10회 세계태권도 선수권 대회를 아테네에서 유치하게 됐다. 준비하고 시범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몸 고생은 그렇다 치고 시범 단이 오기로 하였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오지 못 하게 되어 우리가 자체적으로 시범을 해야 했다.

매일 밤 9시 이후 학생들을 소집하여 연습을 시키다보니 끝나고 돌아가면 자정이 넘는 것은 보통이었다. 이런 저런 일들로 잠 못 이루는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나의 목표는 당연히 세계대회를 무사히 치르는 것뿐이었다. 대회를 위해 한국에서 오신 스승님이나 선배님들께서 원하시는 것은 많은데 몸이 하나라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어 안타까울 때도 많았다. 어쨌든 제10회 세계대회는 잘 마무리 된다.

1991년 동구권의 공산주의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루마니아로부터 기술지원을 요청 받는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크레스트(Bucurest)행 비행기를 타니 기체가 얼마나 낡았는지 좌석의자는 저절로 쓰러지고 좌석 앞의 테이블은 언제 떨어질지 몰라 조심스럽게 붙들어야 할 정도였다. 일단 좌석이 덜그럭거리니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 축축할 정도로 불안하고 초초하여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마음까지 들면서 공항에 도착하니 조그만 간이역 같은 곳이었다.

루마니아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도 비자 문제로 1시간가량 어물거리다보니 날은 어둑어둑해졌고 공항은 조명까지도 그리 밝지 않아 기분이 울적하고 약간은 불안하기도 했다. 만에 하나 기다리다가 모두 돌아가고 혼자 남게 되면 어쩌나하는 필요 없는 걱정까지 슬슬 고개를 들었다. 비자를 받고 나가보니 ‘91년 그리스 세계대회때 만난 회장과 사무총장이 기다려주어 시내 호텔로 가서 방을 정하고 나니 긴장이 다소 풀렸다.

작고 낡은 호텔방은 어두컴컴했지만 그래도 방에 짐을 두고 식사를 하러가자고 하여 한참 골목길을 따라가니 손님은 하나도 없고 조명이 어슴푸레한 식당에 도착을 했는데 한쪽 구석에 자리하고 시커먼 빵 한 조각과 딱딱 한 고기 한 점 먹고 나니 이곳은 생각보다 살기 힘든 곳인가 보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보니 방에 두었던 내 짐속의 물건들이 온데 간데없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하루 저녁을 보내고 다음날 운동을 가르치기 위하여 한 중학교의 실내체육관에 들어섰다. 마룻바닥은 뚫어지고 도복을 입은 학생은 몇 안 되어 운동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태권도 사범이 태권도를 가르치러왔으니 우선 가르치고 난 후에 정비를 해도 늦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을 마쳤다.

다음날에는 학생들이 배가 고파 운동을 못하겠다고 하여 돈을 주고 회장을 시켜 옥수수를 한 자루를 사서 삶아오라고 하여 하나씩 나누어 먹고 나머지는 점심에 먹어야 하니 마르지 않게 비닐 봉투에 두개씩 넣어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태권도를 가르치는 나나 배우는 학생이나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운동을 하였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밤늦은 시간에 떠나는  가난한 그들에게 호텔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이 안타까워 학생들에게 짐을 지키라고 하고 나는 공원 벤치에서 자기로 했다.

▷다음호에 계속

안헌기 사범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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