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대중적 각광을 받고 있는 이종격투기대회를 오래전부터 지켜봐왔던 필자는 착잡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일본의 K1과 프라이드F.C., 미국의 U.F.C.로 대변되는 이종(異種)격투기, 또는 종합(綜合)격투기는 마치 동녘에서 떠오르는 태양처럼 빛을 발한다.

세계 유수의 무예로 발돋움한 태권도가 중국무술, 전통 카라테 등 기존 무예들과 함께 서쪽으로 지는 해처럼 느껴지는 것은 웬 일일까. 한마디로 말해서 이종격투기로 인해 태권도의 비관적인 미래 상황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열리는 이종격투기대회는 사상 유래없는 거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있다. 7만원부터 100만원에 이르는 입장권은 대회 보름 전부터 비싼 자리 순서대로 매진된다. 관중수만 해도 5만을 상회하고 전 세계 120개국으로 중계방송된다.

이종격투기대회는 각 무술의 실전성을 검증하고 인정받는 공개 경연장이 되었다. 주짓수, 유도, 킥복싱, 레슬링 등 각종 격투기 종목의 우수선수들을 교섭하여 수십억 대에 이르는 파이터머니를 지불한다. 그 대가로 유혈이 낭자한 한판 승부 이벤트를 창출케 한다.

문제는 무술간의 우월을 가리는 이종격투기대회에서 태권도의 활약상이 미진한 정도에 그친다는 점이다. 비단 태권도 뿐 아니라 중국무술, 전통 카라테, 합기도 등 기존 무술들조차 부각되지 못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반면 브라질의 주짓수(柔術), 일본의 유도와 극진카라테, 태국의 무에타이, 격기스포츠인 레슬링, 복싱, 러시아의 삼보 등이 격투기로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결과적으로 태권도의 보급에 커다란 지장을 초래할 것이 뻔하다. 태권도 출신자가 이종격투기대회에서 보이지 않고 태권도 기술조차도 크게 활용되지 못한다는 것은 무술간의 인기 경쟁에서 치명적 약점으로 대두된다.

입식타격기인 K1에서도 태권도가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태권도의 무술적 존재가치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다행히 최근 K1에서 세르칸 이르마츠, 아이즈 카투, 루슬란 카라예프 등 태권도 기술을 활용하는 선수들이 등장하여 위안이 되고 있다. 또 지난 1월 한국을 방문했던 격투황제 표도르는 태권도의 발차기 기술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최소의 규칙을 채택하는 이종격투기대회인 프라이드FC에서는 태권도의 입지가 더욱 약화된다.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는 타격기보다는 잡아 넘기고 꺾고 조르는 그라운드 기술이 활용성면에서 우위를 점유한다. 한 조사에 의하면 “격투기에서 가장 필요한 운동종목이 무엇이냐?”라 물었을 때, 주짓수, 무에타이, 권투, 레슬링, 유도, 실전 카라테, 태권도 등 순서로 나왔다 한다.

이종격투기에서 그 활용성이 입증된 무예만이 번성하고 그렇지 못한 무예는 도태되는 엄격한 생존경쟁의 원리가 작용한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태권도를 수련하는 이유는 정신수양적 의미와 더불어 호신술적 유용성을 꼽을 수 있다.

만일 태권도가 실전에서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과연 지금처럼 수천만의 지구촌 수련인구가 유지될 수 있을까?

그간 일반인들은 격투기술 또는 호신술 하면 호쾌한 발차기를 위주로 하는 태권도를 으뜸으로 쳐주었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못할 것 같다. “태권도 유단자면 어디 가서 맞지는 않겠지.”하는 호신술적 유용성에 대한 신뢰감이 급격히 떨어질 전망이다. 태권도는 아동체육이나 건강운동, 올림픽 스포츠 종목으로만 수련될 것이다.

반면 이종격투기에서 강세를 보이는 종목들의 장차 전 세계적인 보급이 활성화될 것이다. 브라질의 주짓수(柔術)를 비롯하여 러시아의 삼보, 태국의 무에타이 도장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리라 예상된다. 일본의 극진카라테는 서울만 해도 7군데 도장이 있으며 전국 대도시에도 확산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실전격투에서 유용한 기술만을 추려서 집중 수련하는 종합격투기 체육관이 여기저기 생겨나리라. 동네마다 그러한 수련장은 늘어날 것이고 자연히 태권도를 비롯한 기존 무술도장은 쇠퇴를 면치 못할 안타까운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계속>

김영선 전문위원(연세대 태권도 전문강사)  wtk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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