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들은 선수들의 심부름꾼입니다. 선수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15년간 성균관대학교 태권도팀을 이끌어온 김범수(53·사진) 감독의 지도철학이다.

여간한 사람들과는 말도 섞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깐깐한 인상에 경기장 옆 코치석에서 복받치는 아쉬움을 억누르며 애간장 타는 표정을 한 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기세다. 목선 옆으로 붉어진 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그의 모습을 보며 관중들은 오히려 재미있어 하는 눈치다. 어찌 보면 지나쳐 보이는 그의 이런 모습들은 한편으로 자신감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당당함으로까지 느껴진다.

지난달 21일 강원도 삼척에서 열린 제37회 KTA회장기 전국단체대항태권도대회 7일째 경기를 마치고 경기장을 막 나오던 그를 쫓아 사진 한 컷을 찍으려고 부탁했더니 곧 환하게 웃어준다. 경기장 안에서 또 밖에서의 그의 엇갈린 두 얼굴은 필자의 궁금증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듣고 싶어 몇 마디 건네 봤다.

- 그렇게 호감 가는 인상은 아니다. 경기장 안에서 말 걸기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 경기장 안에서 만큼은 웃을 여유가 없다. 선수들이 땀 흘리고 있는 장소에서 만큼은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것이 나의 삶이다. 첫 인상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자리를 가도 재밌는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은 내가 한다(하하). 

- 집에서도 무서운 아빠이고 남편인가.
△ 해외 생활을 할 때는 좋은 아빠이고 하나뿐인 딸과 잘 어울리는 좋은 아빠였는데 한국에 오게 되며 잦은 지방시합으로 인한 출장 때문에 아내와 딸에게 소홀해 졌다. 지금은 멀리 유학을 가있는 딸이라 많이 보고 싶다.

- 경기장 안에서의 김 감독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선수들 훈련시키는 것도 상당히 까다로울 것 같다. 
△ 내가 맡고 있는 성균관대 태권도부의 훈련 시간은 오전, 오후로 나누어 각 두 시간씩이다. 일단 훈련이 시작되면 쉬는 시간은 없다. 오전 발차기 오후 겨루기로 이뤄지는 이 네 시간만큼은 무섭게 훈련시킨다. 이 시간에는 어느 누구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숨이 막힐 수도 있겠지만 훈련장을 나오는 즉시 나는 선수들에게 한없이 부드러워진다. 체육관을 나오면 그들은 지성인이고 학생이다.  

- 태권도 훈련 이외에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사항이 있는가. 
△ 1980년부터 1993년까지 중앙아프리카에서 태권도 전파사범 생활을 했다. 여기서 몸소 체득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태권도에 금빛 옷을 입힐 수 있는 것이 외국어라는 것이다. 태권도인이 한 가지 외국어라도 능통하게 구사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자신의 꿈을 이루는데 한결 수월해 질것이라고 확신한다. 매년 졸업생들의 해외 사범을 독려한다. 훈련을 잘 시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국가대표를 배출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건 졸업 후 제자들이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1993년부터 15년째 같은 학교에서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곳에 있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 선수들이다. 나의 진심어린 지도로 선수들이 좋은 결과를 얻게 될 때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어느 날 체중을 감량해 뛰고 싶다는 한 선수에게 “힘없는 발차기는 아무 소용없다. 체중을 감량해 경기에 임하는 선수는 충분히 먹고 뛰는 선수를 당해 낼 수 없다”고 하자 체격차이로 심한 고민에 빠져있던 그 선수는 자신보다 신장이 10cm나 차이나는 선수들을 상대로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 그럼 당신을 실망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 요즘 선수들 보면 위압감이 느껴지는 선수가 없다. 양손은 언제 부턴가 축축 처져 있다. 자세만이라도 종주국 태권도를 대표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해외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사범들도 마찬가지다. 어설프게 가르치면 안 된다.

-바람직한 태권도 지도자는 어떤 모습인가.
△ 많은 지도자들이 선수들 위에 자신들이 존재하고 있는 줄 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훈련을 하고 있는 시간만이지 이외의 다른 시간 까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는 선수들의 심부름꾼이 돼야만 한다. 몸이 아픈 선수를 다독이고 또 선수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항상 묻고 부족한 것은 채워줄 수 있는 모습을 갖춰야 한다. 한마디로 선수들 위에 자신이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정대길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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