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한인태권도사범수기공모 Ⅲ]아테네에 뿌리내린 안헌기의 태권도사랑과 불청객 (5)

초대한인회장을 맡고 있을 때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라는 기구가 생겨나는데 한인회장직 임기를 마치면서 자문위원직을 맡게 됐고 (1981.06.05~1983.06.04) 수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나에게 다시 한인회장직과 평통자문위원 직이 돌아왔다.

안헌기 사범의 젊은 시절 모습.

1980년대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 중동지역으로 가려면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를 경유해야하는 경우가 많았고 아테네가 명승고적이 있는 휴양지로 잘 알려진 탓인지 그리스를 찾는 한국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래서 아테네에는 유동인구가 많았으며 자연스레 여러 가지 사고의 가능성이 늘어난 것이다. 취업해있던 한국여성들도 많아 자질구레한 사고는 하루가 멀다 하고 빈번하게 일어났고 그리스가 선박왕국답게 한국 선원들도 꽤나 많이 왕래하다보니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해 잠잠할 날이 거의 없었다.

사고로 인해 병원 방문은 물론 식사까지 챙겨주어야 하는 일도 생기다보니 어떤 때에는 집사람 눈치를 보며 간단한 아침을 만들어 공항이나 병원으로 실어 나르기도 했다.

이전에는 비자 협정이 되어 있지 않은 탓에 비자문제로 공항에 붙들리는 사람들도 많아 하루에도 몇 차례씩 공항을 들락거린 적도 있는데 한번은 중동의 은행 지점장이 위조지폐 사건으로 억류된 것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아테네 시내 옴모노이아(OMONOIA)라는 동네는 유럽에서도 크다는 어육류 시장이 있는 곳인데 그곳에 있는 싸구려 숙소에 한국인 실업자들이 많이 머물러 있었다. 리비아나 아프리카 수단 등의 나라로 취업을 하기위해서 한국을 떠나온 사람들이었는데 일자리가 없으니 당연히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여비가 없어 떠나지도 못하니 어떤 이는 꼭 갚을 테니 비행기 표 값을 좀 빌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할 때는 속는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때어 먹히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이 일단 화장실에서 나오면 달라진다지만 정말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피해 다니지나 않으면 다행이랄까? 베풀고 살면 자식 대에서 복을 받는다는 말로 위안을 삼으며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한국인의 정을 뿌리치지 못해 손해를 감수해가면서 어쩔 수 없이 도우미노릇, 해결사노릇을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나도 참을성이 없어 사고를 친 적도 있는데 잔돈푼으로 사람을 가지고 노는 놈이 있어 돌려차기로 혼을 내주었더니 이가 부러졌다며 치료비를 보상하라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지나고 나서야 내가 조금만 더 참을 걸 하고 후회도 해 보았지만 어쩌겠나.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도 있듯이 내 스타일이 그런걸! 내 귀가 얇아 남의 말을 듣고 흥분했던 내가 참으로 어리석게 생각되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에 서울에 다니러갔더니 공항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어 조사를 받기도 했다. 나는 상황 설명을 하면서 어려운 사람 편에 서서 돕다보니 실망과 서운함이 폭발하여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하고 나서야 어렵사리 입국을 했다.

국기원과 세계연맹에 들어가니 어떻게 무사히 통과가 됐느냐는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말들을 시키기에 나는 정당하게 입국했으며 태권도 사범이 나쁜 일이야 했겠느냐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적도 있다.

황당한 일들은 부지기수지만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 인생을 살면서도 본인은 좋은 일이라고 믿고 살아온 진짜 바보 같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사법님, 배가고파요’하면 운동을 마치자마자 달려가 먹을거리를 들고 가곤 했던 기억들, 생활비가 달랑달랑해 먹고 싶어도 참아가며 생활을 하다가도 굶는 사람을 보면 쌀이고 배추고 퍼주었던 옛 일들, 되돌아 보건대 과거의 나의 선택에 대한 후회는 조금도 없다.

단지 이제는 예전처럼 어려운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없다는 게 다행스럽고 또한 베풀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이 주어진다면 계속 나누면서 살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 나이만 먹어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결코 만만치 않은 타국 생활에 회환과 가슴이 허전할 때는 한잔 술로 달래보기도 했는데 새날은 매일같이 밝아오는데 옛날 일을 붙들고 반성도 없이 살았다면 그나마 지금 이만큼도 못되어 방황했을 것이다.

김봉식 무관님이 항상 나를 위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술 많이 먹는 사람과 누가 진실을 이야기하려고 하겠는가? 술 한 잔 덜하고 한 번 더 참게나’ 이 말씀을 되새기며 살다보니 나의 입지조건도 조금씩 나아지게 되고 생활도 조금 여유를 갖게 된다.

> 다음호에 계속

안헌기 사범 dssim22@paran.com

안헌기 사범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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