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해외 사범으로 출국하여 프랑스에서 거의 1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다보니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고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구나. 라는 결론을 얻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망의 꿈을 품고 부모와 친구 그리고 고향을 떠나 이억 만 리 프랑스까지 왔건만 하루하루 어려운 처지에 미래는 꿈조차 꾸지 못 할 지경에 처해있었다.

사나이 의리는 저버릴 수 없어 프랑스에 있자니 의가 상하겠고 떠나려니 갈 곳이 없던 차에 그리스대사 채명신 장군과 강창진 사범으로부터의 이주요청에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행을 결심했다.

그러나 그리스로 가기위한 비행기표 한 장 살돈도 없이 결정만 하면 무엇 하나 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거의 일 년 동안 같이 운동을 했던 학생들이 비행기 표를 마련해주어 달랑 비행기 표 한 장 들고 십 원 한 푼 없이 알거지 신세로 그리스로 떠나자니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뽑은 칼을 넣을 수도 없었다. 그리스로 떠나기 위해 파리 공항 로비에 앉아 하염없이 걱정에 빠져 있을 무렵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김무관님께서 공항 안까지 들어오셨다. “외국에서는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며 미화 200불을 손에 쥐어주셨다.

아울러 “정착하기 어렵거든 언제든지 다시 돌아오라”는 그분의 따뜻한 격려의 말씀은 아직도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그리스는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보이지 않아 황량하기 그지없고 공항에 도착해보니 더욱 어찌하여야 할지 막막한 마음뿐이었다.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 없는 일, 죽기 아니면 살기, 어린 시절 알몸으로 삼팔선도 넘어온 처지가 아니던가!

1977년 5월 그리스에서의 나의 인생이 시작됐다. 강사범을 따라 곁방살이를 하면서 몇 개월 또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동안의 노력도 허사 어쩔 수 없이 보따리를 챙겨 홀로 나가게 되었다. 그 당시 그리스에는 한국 사람이라고는 현지인과 결혼한 사람들 외에 한인 몇 명뿐이라 도움을 청할 곳도 잘 곳도 어 막막할 뿐이었다.

이럭저럭 한탄과 후회 속에 야속한 세월은 참 빨리도 지나갔다. 그러는 중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내가 딱해보였던지 그 당시로서는 꽤 큰돈이었던 300달러를 빌려주면서 갚아도 좋고 안 갚아도 좋다며 마음을 써주어 우선 도장을 열어 놓았다.

설치비용이 없는 것은 물론 거처를 마련할 돈도 없어 도장 대리석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야했다. 버린 매트리스를 주워 다가들은 풍월은 있어서 신문지를 깔고 얻어온 담요 한 장으로 유럽의 늦가을을 버텨냈다. 겨울은 뼛속까지 추웠던 걸로 기억된다.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 빵 한개, 우유 한 병을 삼등분하여 하루의 끼니를 해결하고 버티며 눈물 젖은 세월을 고도 아테네에 뿌렸다.

지하실 대리석 바닥에서 운동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밤새워서 A4용지만한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복사하여 광고지를 만들었다. 한밤중에 한쪽 주머니에는 직접 그린 포스터를 넣고 한손에는 풀 통을 들고 추운 겨울날씨에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얼른 바르고 붙이기를 반복했다.

이처럼 고단한 겨울을 보내던 중에 노동부에 근무한다는 이웃 사람이 도와주겠다고 다가왔다. 노동 허가를 우선 신청하고 나서 체류허가를 신청하면 된다는 그의 말에 귀가 솔깃하여 급히 서류를 만들어 신청했다.

희망을 안고 한참을 기다렸더니 노동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노동부의 회신내용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어 경찰서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이게 무슨 청천병력인가 희소식이라 굳게 믿고 기쁨에 한참 젖어 있었건만 그것이 5일내로 떠나라는 추방령인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경찰에서 나 자신의 처해 있는 상황을 손짓 발짓 설명하니 며칠은 봐 줄 테니까 서류를 다시 만들어오라고 덕을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닌가.

고마운 그리스 경찰의 배려로 다시 한 번 용기를 갖게 되었다.

> 다음호에 계속

안헌기 사범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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