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와 5.16을 겪으며 사회는 어수선하고 밤거리를 마음 놓고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골목마다 불량배들이 돈을 뺏고 구타를 일삼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나의 소년기를 보냈던 서울 한복판의 삼청공원 부근은 공기도 맑을뿐더러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좋은 환경이었지만 할아버지의 지엄한 명령 때문에 호신을 위해 1962년 서울 견지동에 있는 청도관 태권도장에 입문했다.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엄하셨는지 삼촌들이나 태가 태권도장에 빠지기라도 하면 저녁밥도 안 주실 정도였는데 그래도 그 덕인지 둘째 삼촌께서는 서울 상대 태권도부를 창설하시고 셋째 삼촌은 동국대학교 태권도부 단원이셨다.

결국 나도 청도관 본관에서 수련하게 되어 대통령배 2회 대회까지 선수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후에는 월남 교관단체육관, 일지체육관 등에서 사범생활을 거치는 동안 그 시절에는 그리 흔치 않았던 외국사람들을 가르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캐나다,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시아, 프랑스, 모리셔스 인들을 가르치다 보니 내 마음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차근차근 사범의 길을 밟고 있던 시절 나에게 큰 유혹의 사건이 생긴다.

박정희 대통령의 막바지 유신정권의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쳤을 때 유신 반대의 성격을 띠었던 언론의 통제와 박해로 인하여 동아일보사와 일지체육관 둘 중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는데 나는 선배와의 의리를 지킬 생각으로 사범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그 당시 김용호 선배가 운영하던 일지체육관 운영을 내가 맡고 있었으나 동아일보사에서 주는 보수가 그 당시 나에게는 상당한 액수였다.

당연히 동아일보사에 잔류해야 나의 형편으로는 마땅했지만 인생이 돈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의리를 택하기로 마음을 먹고 동아일보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선배들은 계속 근무하기를 종용하며 주민등록증을 돌려주지 않아서, 박정길 선배를 설득시키기 위해 술집으로 가자고 하여 함께 향하게 되었다.

어려운 시절이니 만큼 서로 힘든 처지에 돈이 있을 리 없었다. 술자리라야 실비집에서 두부 한 모와 시시한 밑반찬 몇 가지에 소주 몇 병이 고작인데 술잔을 기울이면서 나는 선배와 내가 지켜야할 의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애를 썼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마음을 헤아려준 선배 덕에 주민등록증을 돌려받을 수 있었고 그 후 나는 동아일보사와 이별을 하게 된다.

안헌기 사범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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