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주변에서 기억력이 떨어졌다는 사람을 자주 접하게 된다. 안경을 쓴 채 내 안경이 어디 있느냐고 찾는가 하면 핸드폰을 냉장고 속에 넣어 두고 찾는 사람도 있다. 이사 가면서 전셋돈을 승용차 지붕 위에 놓아 둔 채 차를 몰아 전세금을 몽땅 날렸다는 웃지 못 할 딱한 사정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한다.
아마도 사회가 고도로 근대화-산업화되면서 우리의 머릿속에 처리해야 할 정보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생각된다.
사람은 누구나 잊어버리면서 산다. 과거에 일어났던 좋은 일, 나쁜 일, 슬픈 일, 궂은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잊게 마련이다. 만약 이런 일들을 전혀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매우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기쁨과 슬픔, 괴로움 등의 여러 감정이 서로 뒤섞여 어떻게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모를 것이다.
또 괴롭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자꾸 떠올라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때문에 이런 일들을 잊게 하는 건망증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시켜 주는 자연스러운 심리 작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칠 때는 문제가 된다.
건망증에는 크게 심인성과 기질성 두 가지가 있다. 기질성이란 뇌에 병적인 변화가 생겨서 기억을 못하는 경우이며 심인성이란 어떤 무의식적인 심리적 원인으로 인해 기억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두부 외상, 노인성 치매, 기타 뇌를 침범하는 신경계 질환 등이 기질성 건망증의 원인이 된다.
특히 최근 치매가 사회적 관심을 끌면서 기억력 감퇴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다. 건망증과 치매는 별개의 것이지만 아주 초기 단계의 치매는 구분이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건망증이 심할 때에는 인지기능에 대한 신경심리검사와 MRI와 같은 방사선 뇌촬영 등의 정밀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작 일상생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 심인성 건망증이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린다는 것은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가까이 지내던 사람의 이름이 갑자기 떠오르지 않아 쩔쩔 맬 수도 있다.
이것은 마음속에 있는 무의식적인 콤플렉스가 생각의 흐름을 방해하고 그것이 의식에 떠오르는 것을 막는 것이다.
커다란 심리적 충격을 받은 후에 그 시점을 중심으로 기억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을 목격한 뒤 갑자기 남편과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부정하는 주부도 있다.
심하면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려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기억 상실증도 나타날 수 있다. 대부분 젊은 연령층이나 여성으로 히스테리 성격을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서 자주 나타나며 그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건망증이 자주 나타나게 되면 먼저 자신의 생활이 너무 바쁘고 복잡하지 않는가를 돌아 볼 필요가 있다. 만일 그렇다면 생활을 보다 단순화 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들어 주변에 생각하기조차 싫은 괴로운 일이 있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심인성 건망증은 그 원인이 되는 심리적 요인을 알아낸 뒤 심리적 또는 환경적 문제점들을 찾아 해결함으로써 나아질 수 있다. 또한 심인성 건망증은 괴로운 사건을 기억을 하지 않음으로써 심리적인 불안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건망증을 통해 주변으로부터 관심을 끌거나 어떤 물질적인 이득을 얻으려는 무의식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심리적, 물질적인 이득을 차단하고 현실을 직면토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듯 건망증은 다양한 원인과 동기를 가지고 있다.
연병길 한림대학교 강동성심병원 치매예방센터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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