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 없이 발이 닿는 대로 목적지도 없이 걸었다. 한참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택시 한 대가 계속 우리를 따라오고 있는 것을 알았다. “No taxi. No taxi.” 몇 마디 밖에 모르는 영어로 손짓을 했지만 계속 따라왔다. 드디어 택시가 우리 둘 옆으로 바짝 다가왔고 기사가 물었다. 

“Are you Koreans?”
“Yes. We are Korean.”
“타세요.”

우리가 괜찮다고 사양을 해도 거듭 타라고 해서 택시를 탔다. 하지만 한마디 하지 않고 우리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고 있어서 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평소에 내가 악한 짓이나 원한을 살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이 사람이 타지 않겠다는 택시에 태우고 도대체 어디로 데리고 가는 것인가.

한편으로는 갈 곳도 없는데 한번 가는대로 가보자 설마 죽이지는 않겠지’하면서 안심하기도 했다.

결국 우리가 도착한 곳은 택시 운전기사이신 윤 선생의 집이었다. 그는 사촌처남에게 전화를 걸어서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알리고 우리가 일자리를 잡을 때까지 임시 거처에 있으라고 배려를 해주었다. 윤 선생의 처남이 살고 있는 콘도에서 갈 곳 없는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윤 선생의 사촌처남도 사람이 너무 착해서 같은 또래인 가난한 유학생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또 그 처남과 나는 같은 나이라서 친구처럼 허물없이 약 2개월을 지냈다. 고깃배를 타려고 해도 영주권이 없어서 고깃배를 타기 힘들었다.

호텔을 찾아가 관광객 상대로 모래위에서 태권도 시범을 해 보겠다고 제안하자 두 호텔 측에서 호감을 갖고 일주일 후에 한 번 보겠다고 준비를 하고 다음에 오라고 했다. 그 날 밤 윌리암 김 사범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운영하는 체육관을 도와줄 수 있겠나?”
“내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아셨어요?”
“주방장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알게 되었네.”

김 사범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그 다음날 나는 다시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태권도에 발을 딛게 되었다. 내가 김 사범님 밑에서 태권도를 지도하게 되면서부터 김 사범님이 주관하는 가라테 시합도 대회 때마다 내가 태권도 시범을 보였다. 또 여러 곳에서도 시범을 부탁받아 수없이 태권도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내가 윌리암 김 사범님의 체육관에서 수련생 지도를 도와주기로 하고 숙식 제공과 한 달에 $1000씩 내 적금 통장에 넣어 주는 조건을 구두로 약속했다. 여자친구가 생겨서 결혼을 하려고 적금통장을 달라고 했다. 김 사범은 결혼할 여자 앞에서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관장님. 진정한 무도인은 돈 때문에 무도인을 팔지 않습니다.”

나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미련 없이 일어섰다.
사범 생활을 하면서 태권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은 태권도 영화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권도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김 사범의 체육관을 그만두고 사귀던 한국 교포와 결혼하여 불법 체류자 신분을 면하게 되었다. 결혼식은 처가댁이 있는 네바다 주 리노에서 올리게 되었다. 신랑 측에서 올 사람은 단 한명도 없어 좌석 배치할 때 신랑, 신부 측을 따로 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 그 누가 내 아픈 심정을 알겠는가.

결혼하기 전만해도 불법체류자라 부모님이나 형제들을 초청할 자격이 안 되었고 그렇다고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한국에 나가서 결혼할 처지도 안 되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부모님을 생각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다음호에 계속

정구광 사범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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