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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차기
  • 박천재 미국 죠지 메이슨 대학 교수
  • 승인 2007.04.30 11:46
  • 호수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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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나 곤충들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다. 날개가 있어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그 이유는 두번 거듭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화려한 날개를 펄럭이는 호랑나비도, 단 하루를 살고 생을 마감하는 하루살이도 마찬가지다.

처음 태어났을 때와 두번 새롭게 거듭났을 때의 차이가 무엇인가? 알에서 한번 깨어난 애벌레는 기어다니는 반면, 고치 속으로 들어 갔다가 새롭게 거듭난 나비는  날개를 달고 창공을 훨훨 날아 다닌다.  결국, 기는 것과 나는 것에 차이가 있는데, 날개 짓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의 참 실체가 나타나기 까지는 거듭나는 과정을 거친다. 거듭나는 진화의 과정을 거친 후에 참된 실체가 밖으로 들어나는 것은 무술에서의 ‘비우면서 체우고, 구부리고 나추면서 강해지고 세워지는’ 원리와도 일맥상통한다. 

동양 무도의 대표적 병법서라고 할 수 있는 “부동지신묘록”에는 “망심”과 “본심”이 있다. 마음 속으로 한번 불의의 일격을 받았다고 가정하고 자신의 반응을 유심히 살펴 보라. 대부분 순간적으로 기가 위로 치솟고 감정적으로도 차분하고 안정되기 보다는 긴장과 격분이 동시에 뭉쳐져 일어나는 것을 마음 속으로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망심 이라고 한다. 망심이란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쳐 고르지 못한 상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위와 같은 일차원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상태에서 취하게 되는 반응은 그 속도와 정확성이 떨어질 뿐 만 아니라 판단력도 흐리다. 만약, 이 마음을 제어하고 다스리지 못하면 상대의 공격에 쉽게 휘말리게 된다. 자신을 제대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이차원적인 대응, 즉 망심을 비우고 본심을 속히 회복해야 만 한다.

본심은 위로 뜬 흥분과 긴장이 가라앉아 마음이 몸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어 무릎과 팔 관절을 적절히 구부려 자세를 낮추도록 이끌어 준다.  이렇게 망심을 떠나 본심으로 들어서게 되면 반격능력이 극대화 되어진다. 거의 대부분의 운동들이 그렇치만,  특히 태권도는 관절 위주의 운동이기 때문에 관절을 잘 구부릴 필요가 있다. 만약 잘 구부러지지 않으면 꺾어지는 경우가 생기고, 자연히 그에 따르는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몸이 뻣뻣하고 마음이 뭉쳐진 상태에서 취하는 동작은 옳바른 힘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겨루기를 잘하는 사람의 몸은 아주 부드럽고 가벼우면서도 기민하다.  이는 일차적으로 일어난  반응 (망심)을 제어하고 본심을 회복한 후 적절한 대응을 취하는 훈련을 잘 익힌 탓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태권도 수련의 원리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의 품성이 바꿔지기 위해서는 내면속에 존재하는 “자아”가 먼저 비워져야 한다.  여기서 자아란 나 또는 자신을 말하는데 “소아적이고 소욕적이며 사고의 폭이 제한적인 자신”을 말한다.

이 자아는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들어 있는 “참되고 큰 자아” 즉 온전한 자아가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그런 존재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자신을 가장 완벽하게 위하고 보호 할 수 있을 것 같은 망상을 자아내기도 한다. 마치 불의의 일격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불쑥 일어나는 일차원적인 반응처럼.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그 자아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쉽게 자신을 내어주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래서 극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극기란 허상에 의한 일차원적 반응을 제어하는 것을 말 하는 것으로서, 태권도 수련의 중핵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통 위기와 함께 두려움을 첫번째로 직면하게 되는데, 이때의 두려움은 바로 작은 자아의 깔대기에 의해 만들어진 잘못된 망상 일 뿐이다. 거기서 벗어나고 나면 고요한 호수와도 같은 두번째의 마음에 도달하게 되어, 내면에서 부터 들려오는 메세지와 함께 마치 천둥 번개와도 같은 동작이 불현듯 일어난다.

도장에서 승단 심사 할 때 흔히 접 할 수 있는 광경을 예로 들어 보자. 두꺼운 송판을 주고 ‘넌, 이거 깰 수 있어!’ 하고 말해주어도 대부분 두꺼운 송판 앞에 서면 주먹이, 발이 딱 굳어버린다. 나의 말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다. 그때 ‘네게 가장 큰 적은 네 자신이야. 네 적이 속에서 야 너 그거 못 깨면 손 깨지는데 어떡할라고 그래 그러지. 안 깨지면 사람들 앞에서 망신이라고 그러지. 너는 지금 그거 생각하고 있는 거야. 거기에 반응하느라고 격파할 수 있는 힘을 다 잃어버렸어. 거기에 반응하지 마. 그 생각을 꺾어!’ 그 마음이 전달되면 “꽝” 하고 깨진다. 박수치며 아주 좋아한다.

소아를 먼저 깨고나니 송판이 깨진 것이다. 운동이 그렇고 공부가 그렇고 삶이 그런 것이다. 이렇게 격파를 통해서도 일차적으로 올라오는 것을 비웠을 때, 새롭게 만날 수 있는 힘을 경험하게 된다. 그걸 알면 삶이 달라질 수 있다. 남이 자기를 무시할 때 자기를 비울 수 있는 사람은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것과 같이. 일차적으로 올라오는 악감과 싸움의 충동을 억누를 수 있고 ‘그래’ 네가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받아들여볼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 태권도를 통하여 사람을 변화 시키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결국, 태권도는 자신의 옳바른 실체를 발견하는 수련과정인데, 이를 좀더 쉽게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무엇보다도 절대자와 자신과의 관계 회복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신 내면에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열쇠를 절대자로 부터 이미 받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용하면 된다.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물의 부력에 자신을 맡기고 수영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이 보이지 않는 힘의 실체를 만나게 되는 일은 때때로 시간이 요구되어 지는 경우도 있다. 진정한 깨달음은 내면 속의 힘을 믿고 신뢰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선택의 문제와도 같다.

얼마전 이연걸 주연의 “무인 이원갑”을 보았다. 원작이 ’Fearless” 로 된 이 영화 속에서 이연걸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술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기 기술과 실력을 믿고 거들먹거리며 자기자신을 높이고 세우며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 결과는 패망과 자살이었다. 그의 부친은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해서 싸우는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믿고 실천하는 그런 무인이며 사범이었다. 그래서 그의 부친은 결투에서 졌을 때에도 패배에 당혹해 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무술을 지도했다.

그러나 그 아들 이원갑은 지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작은 자아의 소유자 이었다.  진정한 무도정신을 이해하지도 배우지 못한체, 피나는 훈련과 도전으로 얻은 영광의 결말은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철저히 자신을 높히며 자신 위주로 살아간 삶의 결과가 바로 그것이었다. 처참함을 견디지 못해 결국 깊은 물속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삶은 바로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장님 소녀에게 구조되어 치료를 받으면서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마음의 세계였다. 평화로운 산골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접하면서 차츰 마음이 회복되어 갔다. 특히, 온통 경쟁심리에 휩싸여 살았던 부끄러운 과거와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그들의 심경을 통해 비춰 보게 된다. 그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새로운 힘을 얻고 그는 새롭게 거듭난다.

첫번째의 자신이 철저하게 부인되고 이그러진 자아가 버려진 후 그는 참된 자아를 발견한 것이다. 그 때부터서, 그는 자기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하면서 대의를 위해 싸우는 삶을 선택하는데, 모든 것을 되찿는다.  어떠한 두려움도 그를 붙들어 놓지 못했다. 두 삶이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소아적 자신을 믿고 그를 높히는 삶과,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삶의 결과가 어떻게 그리 다를 수 있는지.  태권도의 “거듭차기”란 소아를 극복하고 지혜를 담은 발짓이다. 이 몸짓은 거듭난 나비가 날개짓하며 하늘을 나는 것처럼, 마음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도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박천재 미국 죠지 메이슨 대학 교수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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