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태권도협회(KTA)가 주관하는 국내 태권도 대회가 열리면 주로 첫째 날 오전 11시에 개회식이 열린다. 개회식에는 지역 시장, 군수, 의회 관계자, 시군 태권도협회장 등이 참석해 대회 개최를 축하하고, 선수 및 지도자들을 격려한다.

그리고 개회사, 대회사, 축사 등이 길게 이어진다. “사랑하는 태권도 가족 여러분...”은 개회식에서 매번 빠지지 않는 식상한 멘트이다.

제45회 전국 소년체육대회 경기장 전경.

태권도 선수들은 개회식만 시작되면 대회장 밖으로 나가려 한다. 그러나 이를 각 팀 지도자들이 만류한다. 선수들을 자리에 앉히면 지도자들은 밖으로 나간다.

모두 개회식을 기피하는 것. 매번 똑같은 패턴의 개회식을 반기는 쪽은 주최 측 밖에 없다.

뿐만 아니다. 오전 11시에 개회식이 열리면 선수들의 계체도 오후로 밀린다. 계체는 보통 오전 11시에 진행되는데 개회식이 열리는 날이면 점심시간 이후에 계체가 시작된다.

체중감량을 한 선수도 꼼짝없이 오후까지 기다려야 한다. 바로 개회식이 이유다.

그리고 역시 같은 멘트가 이어진다. “사랑하는 태권도 가족 여러분...”

‘개회식 잘 끝내면 대회를 잘 치렀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특히 의전에만 집중되어 있는 곳이 바로 태권도 대회장이다.

개회식과 계체가 함께 진행되면 대회장이 어수선하고, 대회를 유치한 주최 측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태권도 대회의 주인은 결국 선수들이다.

그렇다면 대회 임원들은 개회식을 반길까?

심판들은 모두 참석하지만 경기, 기록, 질서위원회 임원들은 100% 개회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경기위원회 임원들이 개회식을 준비하지만 개회식이 진행될 때는 점심을 해결할 때가 많다.

대회 임원과 자원봉사자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한다면 개회식과 계체가 동시에 가능하다.

관중석에 앉아 볼거리도, 흥미도 없는 개회식을 반강제로 지켜보는 것이 선수들의 몫은 아니다. 개회식이 끝나면 부리나케 계체실로 달려가는 선수들의 모습은 대회장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에 이 부분에 불만을 제기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어쩌면 소통할 수 있는 통로 자체가 태권도 대회장에는 없다.

개회식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꼭 개회식 때문에 계체를 미룰 필요는 없다. 계체를 11시에 진행하고, 개회식을 오후 1시로 미루는 방법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간혹 참석이 예정된 시장, 군수도 일정 때문에 개회식에 참석하지 못할 때가 있다. 개회식 때문에 계체를 뒤로 미뤄야 한다는 근거도, 논리도 없지만 관행은 선수들이 받아들여야 몫이다.

문제는 개회식뿐만 아니라 국내 태권도 대회는 ‘디자인’(Design)이 없다.

태권도 대회에서 최대 이벤트는 시범단 공연이 전부다. 선수들은 시합에만, 지도자들은 메달에만, 학부모들은 자식 챙기기에만 바쁠 수밖에 없다.

시선은 늘 같은 곳에서 맴돈다. 프로스포츠지만 축구와 야구, 농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태권도 경기장은 이벤트가 없다.

항상 경기만 진행된다.

이렇다보니 태권도 대회장에는 그나마 지역 주민들의 발길도 줄어든다. 태권도 대회장은 경기를 빼고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관중이 없으니 기업의 스폰이나 후원도 없는 게 당연하다.

물론 즐기기 위해 태권도 대회가 열리는 건 아니지만 관중이 많아야 시장이 확장되고, 기업과의 연결고리도 생긴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선수들의 선수 생명도 길어질 수 있다.

자식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학부모들에게, 계체도 밀리는 개회식을 기다리는 선수들에게, 메달 획득에 스트레스를 받는 지도자들에게 울림이 있는 태권도 경기장.

조금만 생각해보면 태권도 경기장에서 색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단지 아무도 시도를 안 할 뿐이고, 그래서 변화가 없을 뿐이다.

KTA는 통합에 따라 생활체육 인력 3명, 신설되는 홍보, 마케팅부에 2명의 신입직원을 채용한다. 이에 따라 운영비에 4억 2천만 원을 증액 편성했다.

태권도 대회장의 새 바람이 될 디자인, 2017년에는 볼 수 있을까?

류호경 기자  hk4707@naver.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류호경 기자
• hk47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