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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인 태권도 사범 수기 공모] 좌충우돌 이정규 사범의 미국 정착기(17)
위력 격파에 내 목숨을 걸다
  • 이정규 사범
  • 승인 2007.04.09 13:14
  • 호수 541
  • 댓글 0

● 거북이 등짝이 된 주먹 

초등학생 때 팔 다리가 몇 번은 부러져야 사범이 될 수 있다는 사범님 말씀에 겁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난 태권도 사범은 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말씀 그대로였다. 태권도가 삶이 되니 그럴 일이 종종 생겼다. 캐나다와 미국을 가르는 바다같이 큰 이어리(Erie) 호수가 있는 펜실베니아에서 태권도대회 개막 시범을 할 때였다. 대회 주최 측에선 송판을 쉽게 깨지지 않도록 정사각형에 가깝게 잘라 쓰는 것이었다. 너무 쉽게 깨지면 격파에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이정규 사범의 뒤차기 블록겨파 시범.

관객들이 태권도인 들인데 대충 할 순 없어 단단히 맘먹고 시범에 임했다. 내 순서가 돼서 주먹 격파를 했다. 평소 같으면 보조자 둘이 잡으면 송판만 뚫고 들어갔었다. 죽을힘을 다해 쳤다. 주먹을 질렀더니 체육관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나며 송판들이 박살나고 보조자 둘마저 뒤로 날아가 자빠지는 게 아닌가. 연이어 손끝 격파를 하는데 조준을 하며 보니 손이 쑥쑥 부어 오르는 게 보였다.

죽을 맛이었다. 이거 꼭해야 되나?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손끝으로 질렀다. 손이 저리고 쑤신 게 그렇게 아프긴 난생 처음이었다. 시범이 끝나고 나자 많은 사람들이 잘 봤다며 악수를 청하는데 거절할 수 없어 웃으며 받아주었다. 하지만 할 때마다 꽉꽉 쥐는데 손이 너무 아파 아찔아찔하며 쓰러질 것만 같았다. 통증을 참느라 혈색이 걷히고 숨도 쉬기 힘들었다.

마침내 돌아서 보니 손이 거북이 등짝처럼 부풀어 올랐다. 뼈가 부러진 것이다. 함께 시범한 우리 도장 학생들은 내 손을 보며 사진 찍고 난리 났다. 손이 그렇게 커져도 괜찮냐고 묻길래 이 정도쯤은 괜찮다고 얘기했다. 그러고 나니 아픈 척을 하긴 더욱 힘들었다. 아내만 내 심정을 알고 속이 타고 있었다.

다음날은 여기까지 온 김에 우리 시범단원들과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 가기로 했으니 나만 빠질 수도 없었다. 밤새 손이 아파 쩔쩔매면서도 얼음찜질로 때웠다. 믿었던 주먹이 격파 한 번에 나갔다는 걸 보여주기도 싫었고 아직 까지 병원비를 무서워하던 처지라 갈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 뒤로 반년 동안은 손을 제대로 쥘 수조차 없었다. 일 년이 지나 나았다 싶어 시범을 하는데 주먹으로 송판을 치고 나니 손등 위로 뼈가 솟아 올라왔다. 너무 아팠다. 이게 바로 골병이란 거구나 하고 느끼던 순간이었다. 젊다고 자신하며 어지간히 혹사시켰더니 결국은 이렇게 되고 말았다. 아내가 그런 시범 말고 다른 거 하라고 하지만 우리 학생들이 점프 발차기나 공중 회전등을 나보다 잘하니 다른 건 할 게 없었다.

그나마 이들이 다칠까 봐 차마 못해보는 위력 격파에 내 목숨을 거는 것 밖에는 다른 수가 없었다. 우리 학생들은 다른 것은 다 따라 해도 위력격파는 겁을 낸다.

시멘트 블록은 잘 골라야 한다. 파는 곳마다 사이즈며 재질이 조금씩 틀리다. 신더 블록(Cinder block)이라고 써진 것은 우리가 아는 회색벽돌 재질이다. 비교적 잘 깨진다. 비슷해 보이지만 콘크리트 블록(Concrete block) 이라 써진 것은 자갈이 들어가 있어 훨씬 단단한 블록이다.

처음에 이게 구분이 안돼서 콘크리트 블록들을 찼는데 발이 얼마나 아프던지. 분명 지난주엔 이렇게 안 아팠는데... 보도블록으로 쓰는 벽돌은 일반 빨간 벽돌과 모양새가 비슷하지만 진짜 단단하다. 때렸다가 뒤돌아서 손 붙잡고 운적도 있다. 그날도 열심히 이것저것 고르다 일하는 사람에게 2인치 두께 블록은 없냐고 물었다.

몇 장이나 필요하냐고 해서 열 장이면 된다고 했더니 “너 혹시 Master Lee 아니냐?”고 묻는다. 네가 손발로 블록 깬다더니 진짜 오늘 그거 사러 온 거냐는 거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동료들을 불러 이 사람이 이 사범이라고 신나서 소개한다. 악수하고 나더니 역시 손에 기운이 틀리다, 손이 저리다는 등 자기들끼리 별별 소리를 다한다. 웃어만 주었다. 어떻게 생각하건 그건 자기 맘이니까.

● 부러진 야구배트 

평소 나를 만만히 보던 터프가이가 있었다. 자기도 성질이 있고 나 정도의 운동은 했다는 걸 은근히 과시했다. 말투도 거만하고 행동도 그 까짓 태권도 사범쯤이야 였다. 나도 볼 때마다 내심 편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야외시범이 있었다. 관객들 사이에 섞여 있길래 불렀다. 힘 좋은 사람이 필요한데 좀 도와 달라고 했다. 힘쓰는 일이라니까 좋아했다.

그냥 이 야구배트를 배팅 하듯이 꽉 쥐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잡고 있는 야구배트를 기합을 넣고는 뒤후리기로 찼다. 일초도 안돼는 사이에 내 뒤축에 맞은 배트가 퍽 소리와 함께 부러져 날아가고 그는 손잡이만 들고 서 있었다. 입이 떡 벌어졌다. 자기가 잡고 있었으니 차서 배트가 꺾여 나갈 때 충격을 느꼈던 것이다.

저 발 한 방이면 진짜 가겠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 뒤로 대번에 태도가 달라졌다. 볼 때마다 웃고 인사를 하곤 정말 그게 부러지더라며 태권도를 다시 봤다고 했다. 그러고 나니 나도 대하기가 편해졌다.

뒤축으로 차는 뒤후리기는 내 주특기이다. 군대에서도 겨루기 도중 상대를 뒤후리기로 오른 턱을 받아 찼는데 반대쪽인 왼쪽 턱 뼈가 깨지면서 귀 통로를 뚫고 올라왔다. 상대는 피를 흘리며 기절한 채 깨어나질 못했고 군단 병원에 후송되어 수술 받고 석 달을 입원했었다. 내가 찬 돌려차기에 갈비뼈가 부러진 친구도 있었다. 이 돌려차기와 뒤후리기 주먹, 손끝 위력 격파가 미국에서 실력 없는 내가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던 무기였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대회 개막식에서 아는 한국 사범님들 끼리 시범을 하기로 했다.

다들 난다 긴다 하는 실력자들이었다. 거기에 비해 난 역시 위력격파 밖엔 또 할 게 없었다.

 문제는 바로 전 주에 열린 시범에서 잘못 고른 콘크리트 블록을 무를 수가 없어 뒤차기로 찼다가 발뒤꿈치가 깨졌고 야구배트를 차서 발등이 멍들어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범님들이 최신형 발차기로 격파를 해 보이는 동안 열심히 보조를 하다가 내 차례가 되었다. 야구 배트 두 개를 청 테이프로 묶어 허공에 들게 하고 뒤후리기로 차는 것이었다. 다른 사범님들도 한 번에 두 개는 무리가 아니겠느냐고 걱정들을 해 주셨다.

그래도 한다면 해야 되는 게 내 모난 성격이었다. 첫 번째 뒤후리기로 찼다. 퍽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두 개 중 하나만 꺾였다. 뒤축에 불이 났다. 다시 한 번 찾다. 부러지지 않았다. 또 한 번 차 봤는데 발이 아프니 도저히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하지만 시작을 했으면 끝을 내야지 않겠는가.

뒤축은 더 이상 쓸 수 없어 이번엔 돌려차기로 찾다. 하지만 발등도 상해있긴 마찬가지였다. 한 번, 두 번, 간신히 배트가 꺾이긴 했지만 꺾여 진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발이 불에 지지는 듯 뜨겁고 아파 도저히 못 차겠다 싶었는데 관객들이 응원을 해주고 있었다. 어금니 꽉 깨물고 한 번 더 찼다. 세 번째 돌려차기에 가서 두 개가 완전히 분리되었다. 도합 여섯 번을 찬 것이다. 한 번에 끝냈지 못해 민망했었는데 도리어 관객들이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 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여러 번 차면 발이 안 아프냐고 감탄을 했다. 내가 한국 사범 깡다구 보여 주려고 했는 줄 아는 것 같았다. 부러진 배트를 들고 와서 함께 사진 찍고 가져도 되겠냐고 묻는 학생과 부모도 있었다. 그러라고 했다. 불붙은 것 같이 화끈거리는 발로 저는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문 하루였다.

▷ 다음호에 계속

이정규 사범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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