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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인 태권도 사범 수기 공모] 좌충우돌 이정규 사범의 미국 정착기 (15)
아내는 수준급
눈물 짜가며 배운 태권도
  • 이정규 사범
  • 승인 2007.03.26 14:05
  • 호수 539
  • 댓글 0

● 터프가이 물리치기 - 시간당 $250 

가끔 수련생들이 내게 묻는다. Master Lee도 스트리트 화이팅(Street fighting:길거리 실전 싸움) 경험이 있느냐? 물론 있다고 대답한다. 미국은 법이 엄해서 주먹다짐이 흔하지 않다.

한국에 있을 땐 젊은 혈기에 태권도를 한 탓인지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대부분은 치한들을 몇 초 사이에 때려눕히고 그것으로 끝났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엔 7대 1까지 붙어 본 경험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해주면 이 사람들은 넋을 잃고 듣는다.

이정규 사범의 부인 김시현의 뒤돌려차기 시범.

한국이라면 별 것 아닌 이야기들도 여기선 대단한 취급을 받는 것이다. 태권도가 실전에 쓰일 수 있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겐 더 없이 재미난 실화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선 스트리트 화이팅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대단한 싸움꾼으로 인정받는다. 사냥과 낚시로 단련된 레드 넥이라 불리는 이 남부 시골사람들도 나름대로 싸움 기술들이 있었다. 싸움이 붙으면 냅다 무릎부터 걷어차고 손으론 목을 친다. 넘어진 상대는 발목 복숭아 뼈를 밟아 버린단다. 꽤 실전적인 기술이었다.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억센 남부 사투리를 써가며 말을 하는데 안 봐도 터프가이다. 이종격투기 대회에 나가는데 싸움 기술 될 만한 무술은 다 배웠고 이제 발차기를 좀 보강하려고 한다는 거다. 제 말만 막 했다. 전화로는 그렇고 우선 와 보라고 했다. 

20대 후반에 훤칠한 키에 다부진 근육이며 온몸에 멋진 문신 등 진짜 싸움께나 할 것 같이 생겼다. 눈빛이 아주 거만한 게 살기가 돌았다. 여유 있게 미소와 당당한 목소리로 악수를 하며 일부러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눈에서 지면 필시 이런 녀석들은 바로 붙자고 대들게 마련이다. 언제고 사범은 점잖지만 당당해야 한다.

다짜고짜 두 달 후에 아틀란타에서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미국 제일의 무규칙 격투선수권대회)지역 예선이 있으니 그간 빡세게 운동 좀 하려 한단다. 다른 도시에 자기들끼리 싸움만 하는 체육관이 있는데 가까운데서 매일 훈련도 할 겸 해서 우리 도장을 찾아 왔단다. 별의 별 무술 이름들을 다 배웠다는데 제대로 블랙벨트까지 한 것은 없고 그저 싸움만 배우고 다닌 것이다.

여기 스파링 같이 할 만한 성인 좀 있냐? 넌 특기가 뭐냐? 니가 터프 하다던데 사실이냐? 나한테 뭐 가르칠 만한 게 있겠냐? 척 봐도 남과 어울려 배울 놈이 아니었다. 넌 뭐해 먹고 사냐? 그랬더니 자긴 싸움만 하고 돈은 아내가 번다고 대답했다. 이런 녀석은 다른 학생들만 패고 나중엔 나한테까지 덤벼 먹을 것이 뻔했다.

그러냐 너 같은 녀석은 일반 학생들과는 안되고 내가 개인교습은 해 줄 수 있다 그랬더니 자기도 그걸 원한단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다. 얼마면 되냐고 큰소리다. 난 시간당 250불이니까 생각 있음 해보자고 했다. 움찔한다. 250불씩이나?

넌 날 아마추어라 생각했냐? 그건 아니란다. 그래 난 프로다. 내가 너 하나 가르치는 시간이면 30명도 한 번에 가르친다. 그러니 그 돈은 내야 내가 어떻게 시간을 내 볼 것 아니냐 그랬더니 단 박에 풀이 꺾였다. 한번 싸우면 얼마 버냐고 물으니 70불 받는단다. 이길수록 돈이 올라간다고 하지만 그래봐야 이런 지역 경기에선 병원비가 더 드는 실정이다. 그 터프 하던 녀석이 역시 프로는 다르다며 기가 꺾여 인사만 꾸뻑하고 갔다.

사실 난 250불 받고 개인 교습 시켜본 적이 없다. 이 동네는 개인교습이 들어올 만한 곳도 아니다. 하지만 그게 내 값이다.  

맥도날드 같은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시간당 수당은 약 5불 50전 정도다. 최저 임금이다. 공장 직원들이나 보통 오피스 직원들은 10불대이고 시간당 15불 이상 20불이면 괜찮은 직장이다. 시간당 40불을 벌면 일 년 연봉이 10만 불 우리 돈으로 약 1억 원인 셈이다. 우리 도장 부모들은 그래서 나를 좋아한다. 시간당 250불짜리 사범이 자기 아이를 가르쳐 주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누가 개인 교습비를 물으면 다 들리게 크게 말한다. 시간당 250불이라고. 내 가치는 내가 만들어 간다.

● 아내와 함께 하는 태권도 

미국으로 건너와 이제까지 많은 시범을 했다. 시범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인원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뽕짝이 잘 맞아야 그나마 효과가 좋다.

아내는 태권도를 모르던 유학생이었다. 또래 한국 여성들이 그렇듯이 그저 조신하게 공부하고 있다가 시집갈 요량이었다. 하지만 나를 만나 결혼해서 배운 태권도가 이젠 3단이다. 남들은 사범 마누라니 그냥 줬겠지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다.

미국 학생들에게야 야단치며 가르치기 힘들다. 하지만 집사람은 내가 미워도 한 번 울면 그만이다 싶어 막 야단쳐가며 가르쳤다. 부부간에 운전 가르치다가도 이혼을 한다는데 아내는 잘 참고 눈물 짜가며 배운 태권도가 이젠 수준급이다. 그래서 나와 아내 둘이면 간단한 시범은 가능하다. 이젠 나보다 태권도를 좋아서 하는 사람이 되었다. 2006년 여름 국기원 해외 지도자 연수과정도 수료했다.

결혼 전 집사람은 운동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참 허약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태권도를 통해 건강한 몸이 되었다. 공부하는데도 무척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난 태권도가 몸에 좋으냐고 하면 좀 우물쭈물 한다. 경우에 따라선 안 그럴 수도 있다는 게 내 경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자기가 증인이 돼서 문의하러 온 사람들에게 태권도가 좋다고 말하니 그 말에 힘이 실린다.

몸이 건강해지니 마음도 밝고 씩씩해졌다. 학생들이 오면 수업시간도 안되었는데 먼저 나가 학생들과 품새 연습을 한다. 난 어릴 적부터 군대 교관에 이르기까지 태극 품새를 지겹도록 한 것 같다. 그래서 지겨운데 아내는 좋아서 한다. 그래서 우리 도장 품새 교육은 내 아내 담당이다.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한참을 품새를 하면 정말이지 녹초가 되기 때문이다.

나야 앞에서 입으로 가르치면 되지만 아내는 짝이 없는 사람들의 상대도 되어준다. 아이고 어른이고 가릴 것 없이 함께 운동을 해준다. 그러니 사실 체력소모는 나보다 클 텐 데도 몸 풀기, 품새, 짝해주기, 상담, 등록까지 맡아 해준다. 아내 없이 도장을 한다는 건 내게 아주 힘겨운 일이 되었다.

아내는 우리 시범단의 최고참이다. 여자이고 조그만 체구라 한계가 있지만 매트도 없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낙법을 한다거나 격파를 하면 사람들이 놀랜다. 약점을 보완하고자 생각해 낸 것이 무기술과 호신술 겨루기이다. 쌍절곤의 현란한 동작을 기합에 발차기까지 섞어 하는 것을 보면 제법 당차 보인다.

항상 우스꽝스런 악당 역인 나를 짧지만 빠른 손발로 멋지게 해치우고 딱 폼 잡고 씨익 웃으면 다들 즐거워한다. 무대 체질이라 시범할 땐 딴사람이 된다. 기합이며 눈빛이 달라진다. 시범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아내는 항상 웃고 친절한데도 다들 만만히 보지 않는다.

아내도 실력이 늘었지만 뒤쫓아 오는 여학생들 때문에 시범의 강도를 높여가다 보니 시범이 끝나면 멍이 들거나 다리를 절면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보람이 있고 재미도 있다. 남들 앞에선 끄떡없는 체 하다가 집에 돌아와서야 끙끙대며 서로 약을 발라 주며 웃는다. 아내가 나를 가장 잘 이해 주는 사람이 된 것은 역시 같이 하는 태권도 덕분이다.

▷ 다음호에 계속

이정규 사범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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