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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태권도와 시선
  • 박천재 미국 조지 메이슨 대학 교수
  • 승인 2007.03.26 14:02
  • 호수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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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재 미국 조지 메이슨 대학 교수.

사회 각 분야의 저명인사들은 나름데로의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을 고수라고도 부른다.

그들은 쓸만한 물건을 고르는 것에서 부터 사람을 알아보는 눈 그리고 상황을 분별하여 보는 눈을 두루가지고 있다. 그들은 사물이나 사건을 고르게 보되 시선을 한곳에 집중하여 보는 눈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투시력은 단순히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눈 앞에 놓인 상황을 단순히 육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세계까지를 염두에 두고 바라본다. 이는 마음의 눈 즉 심안으로 마음의 영역을 살펴보는 것을 말한다. 사물을 대하는 마음의 태도라고도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안목이 그냥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으로 감각하고 믿음의 눈으로 살피는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신 내면의 모습을 어디인가에 비춰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시선은 태권도를 수련하는데 있어서 중핵의 한 면이다. 태권도 고수의 시선은 어떠한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것 처럼 사람의 에너지는 대체적으로 바라보는 그 방향으로 흐른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태권도 공방시 타격 지점과 시선의 일치가 요구된다.

이것은 힘의 일차원적인 원리이다. 어느정도 훈련된 무술가들은 공략하는 목표지점에 대한 예리하고 바른 시선을 지니고 있다. 팽팽한 힘의 흐름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으며 상대의 헛점을 깊이 그리고 최대한 확대하여 그곳에 시선을 집중하여 겨루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고수와는 달리 그들은 상대의 마음을 꽤뚫는 심안이 흐리다. 가시적인 것에만 편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고수는 상대의 허세나 처한 외부적 상황에 결코 쉽게 휘말리지 않는다. 사납게 구는 상대 일수록 겨루는 상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심안을 통하여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표면에 나타난 상황뿐 아니라 그 이면의 세계까지를 직시하는 안목이 있다. 그리고 고수는 승부에 집착하는 그 착시나 착념에 의해 스스로 무너지는 우를범하지 않는다.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진정한 승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패에 따르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있다.

잘 하려하기 보다는 평상시 처럼 임하고, 자신을 통제하되 스스로 통제된 힘만을 의지하지 않는다. 절대자와 주위 사람들은 현제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살피는 반면마음을그들과 함께하려는 노력을 한다. 최선을 다하되 결투 결과 그데로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한다.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보되 주눅들지 않고 약한 상대를 얕잡아 보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고수는 겨룸에 있어서 마음에 자유함이 있다. 바른길의 선택만이 옳바른 뜻을 이루는 것임을 믿는 확신의 눈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오는 자유함은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힘을운용하게 한다.

태권도 도장에서 행하는 송판깨기 훈련이나 심사때 실행하는 격파를 통해 삶의 안목을 높히는 것은 어떨까? 격파는 타격의 정확성 향상 그리고 자신감이나 자긍심 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격파의 경험이 삶의 방식이 되기위해서는 철학적 사고가 필요하다.

태권도 격파 내용에 심리적 그리고 물리적 힘의 법칙과 더불어 형이상학적 영역인 철학이 포함되어야 한다. 신체의 뽀족한 부분으로 물체를 스피디하게 내려치는 것은 물리적인 부분이다. 긴장된 상태에 있을때 송판의 결에 시선을 모으는 것은 심리적인 부분이다.

송판의 촘촘한 결이 크게 보일 때 까지 정신을 집중한다. 이는 송판의 견고함에 마음을 빼앗겨 실패에 따르는 두려움과 부상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송판의 결이 크게 보일 때 "얍"하는 기합과 함께 격파 한다. 다음과 같은 철학적 사고도 함께 한다. 송판이나 격파물은 우리의 실제 생활에서 만나는 위기나 또는 도전해서 넘어야 할 순간적인 장애물이라는 것을.

이 순간적 장애물은 우리를 어렵게하는 적으로 나타나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나 친구와도 같은존재라는 사실도 함께. 실제로 이러한 훈련은 격파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심신에 탄력성을 길러 준다. 그래서 나는 격파는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누누히 강조한다. 태권도는 어떠한 형태로든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태권도는 이제 나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소중한 일 부분이 되었다. 태권도를 시작한 이후 나는 수많은 시간을 세계 챔피언이 되어 시상대에 올라선 나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던 지난 날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2년 제5회 세계태권도대회 우승자가 되었다.

세계대회를 앞두고 합숙 훈련을 할 때는 거의 매일밤 시상대에 올라가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태극기가 개양되는 장면을 상상하며 잠들곤 했다. 이러한 심상훈련은 목표를 달성한 나의 모습을 더욱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고 실패할 수도있다는 공포감에서 벗어나 훈련에 매진 할 수 있었다.

낯선 남미 에콰도르 꽈이야킬에서 열린세계대회 준준결승전의 부상으로 다음 경기에 임한다는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치달았었다. 하지만 이에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결승전에 올라 전년도 우승자인 멕시코 선수를 이기고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이것이 가능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믿음의 눈으로 우승하는 모습을 그려 보았던 것이며 그 힘이 부상의 위협도 뛰어 넘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 믿는다. 나는 이것을 믿음의 상상과 집념의 결정체라 생각하고 젊은 날의 좋은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 무엇을 보고 있는가? 어디에 마음의 초점을 두고 있는가? 순간 순간 감사하는 마음에 젖어 살기보다는 원망과 불평에 내주고 살고 있지는 않는가? 감사함에 마음이 다가가 이를 크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진자는 자신의 형편과 상관없이 기쁨이 넘치는 것을 경험 할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부터잠드는 순간까지 온갖 것들을 보고 산다. 보아서 이득이 되는것을 보기도 하지만 해가되는 것도 본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만약 해가되는 것이나 불필요한 것을 보았거나 보게된다면 이는 꼭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구별할 수 있기 위한 것이라고.

박천재 미국 조지 메이슨 대학 교수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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