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도장 광고도 할 겸 동네 경찰들을 위한 호신술 무료 세미나를 도장에서 열었다. 경찰 몇 명이 왔다.

간단한 낙법이며 꺾기, 타격기를 가르쳤는데 땀을 흘리며 열심히 따라했다. 순찰중인 한 경찰이 정복차림으로 들어왔다. 오늘 꼭 오고 싶었는데 하필 근무라고 했다. 그럼 내가 나가서 한두 수 가르쳐 주겠다고 나갔다. 상황을 설정했다.

블랙벨트 수여가 끝난 후 성찬식을 갖고 있는 이정규 사범과 부인 김시현.

상대가 너보다 총에 손이 빨리 갔을 때, 상대가 내 총을 빼앗으려 할 때 등이었다. 물론 경찰에서도 이 정도는 배우지만 우리 식 방법도 재미있고 효과적인 게 많다. 짧지만 타격력이 큰 기술로 바로 이어지도록 보여줬다. 쓸 만하다고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총을 내게 겨눠보는 시늉을 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내 말이 짧았던 건지 말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옆구리에서 권총을 뽑아 내 얼굴에 들이댔다. 연습 상황이 실전 상황으로 돌변했다. 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윽~ 이게 아닌데...’ 미국 생활 팁 하나, 영어가 짧으면 명도 짧아진다!

아무리 빈총이라도 사람에게 총구를 직접 들이대는 것은 심각한 범법행위이다. 게다가 미국 경찰은 유사시에 바로 발사 되도록 근무 중엔 총알을 장전해 놓는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진 않았지만 총알이 탄약실에 장전된 총구를 코앞에서 본적이 있는가? 아무도 안 말렸다.

권총을 뽑아 든 사람이나 주위의 구경꾼들이 경찰이다. 다들 호기심만 잔뜩 어려 있다. 양손으로 권총을 잔뜩 움켜쥐고 있다. 영화에서 보면 보통 사람들은 총을 한 손으로 대충 쥔다. 하지만 이 상황은 상대가 진짜로 총 쏘는 직업을 가진 프로였다.

실제상황이라면 이들은 분명 한 번에 뛰어들지 못하게 거리를 둘 것이다. 다행이 거리가 좁았다. 빠르게 비껴서며 손날로 손목을 쳐내며 뛰어들어 겨드랑이로 양팔을 잡고 온 몸을 던지며 비틀어 넘겼다. 총구는 계속 허공을 향하게 만들고. 그래도 죽어도 총은 안 놓친다.

저항이 완강했지만 나 역시 지면 이 동네를 떠야 될 상황이니 봐줄 수가 없었다. 경찰의 자존심과 사범의 자존심이 붙은 것이었다. 얼마를 땅바닥에서 몸싸움을 하고 팔을 꺾었더니 OK! 이젠 됐단다. 다들 박수치며 신나 했다.

당한 경찰은 꺾인 팔이며 맞은 손목이 얼얼하단다. 난 턱까지 차는 숨을 참고 웃어 보이느라 숨 너머 갈 지경이었다. 그 뒤로 동네 거리축제 때면 순찰을 도는 경찰들이 먼저 와서 아는 체를 해 준다. 그 만큼 공신력을 얻은 것 같아 고맙기만 하다.

가끔씩 이렇게 시험을 치를 때가 생긴다. 어려운 상황을 들고 와 풀어보란다. 대답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가짜 된다. 지금 못하면 실제 상황에서도 방법은 없는 거 아닌가.

필립 아저씨도 경찰이었다. 어제는 300파운드 나가는 녀석하고 몸싸움하다 깔려 버렸는데 권총은 손에 안 잡히고 힘은 딸리고. 동료가 달려와서 구해주긴 했지만 놀래 죽는 줄 알았단다. 이사범, 당신이라면 어쩌겠나? 단 규정상 때려선 안된다. 뭐 이런 식이다. 짧고 명쾌한 답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미국에서 사범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 우리도장 승단 심사

미국에서 1단이 되기 위해선 보통 3년의 수련이 필요하다. 어떤 도장은 5년이 걸리기도 한다. 제시한 심사 기준에 뭐 하나라도 못 미치면 그나마 탈락이다. 그러니 ‘블랙벨트'라고 하면 어떤 수준에 이른 자기 절제가 강한 사람으로 인정해 준다. 심사 또한 만만치 않다. 하루 종일 진땀 빼며 치른다. 배운 모든 것을 다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 도장 승단 심사는 3년에 걸쳐 배운 것을 증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 시연해 보이도록 하는데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저 도장 다니는 줄 알았는데 언제 저런 많은 것들을 배웠나 싶고, 어려워만 보이는 관문을 하나씩 통과해 내면 나이와 관계없이 존경심마저 생기게 된다. 심사자는 이 과정을 통해 ‘자기 성취’와 ‘자신감’을 맛보게 된다.

심사의 주된 항목은 기초체력, 품새, 발차기, 겨루기, 한번 겨루기, 호신술, 격파, 질의문답 등으로 이어진다. 도장에 따라 항목이 더 추가되기도 한다. 1단 심사가 이러하니 2단, 3단 심사는 당연히 더 어려워진다. 그러니 보통 5, 6단 이상인 사범님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로 보이겠는가.

우리 도장의 경우 격파를 중요시한다. 1단은 송판 30장, 2인치 두께 시멘트 블록 1장, 2단은 송판 50장에 시멘트 블록 2장을 격파해야 한다. 손발이 얼얼할 정도로 수위를 조절해 놓았다. 그간 노력해서 배운 것들을 가족, 친지 앞에서 다 보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이다.

송판을 격파 할 때마다 관객들이 박수와 환호로 격려를 해준다. 마지막으로 시멘트 블록을 깨야 하는데 몸이 작은 수련생이나 여학생들에겐 다소 무리가 되기도 하지만 이것이 바로 도전이다. 가족들만큼 내 속도 바싹바싹 탄다. 제발 다치지 말고 깨야 할 텐데 싶어서이다.

난 이 순간을 위해 따로 훈련을 시킨다. 평소 승급 심사 때 깨고 남은 얇은 송판을 모았다가 그것을 재활용해서 다시 깨는 훈련을 몇 달 전부터 매일 시키는 것이다.

결에 직각으로 때리게 하기 때문에 손이 아픈 것은 물론 몇 배의 힘으로 때려야 부러진다. 그렇게 수 백번 하다 보면 힘도 생기고 요령도 생기고 자세도 잡힌다. 특히 이 한 순간을 위해 긴 시간을 준비했다는 자신감이 제일 중요하게 작용한다.

물론 안전을 위해 손에 붕대를 감아 준다. 그 순간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부모도 친구도 아무도 도와 줄 수 없다. 관객들의 숨죽인 시선과 심사관인 내 시선까지 모두 중압감으로 작용한다. 마음을 다 잡아먹고 일 순 큰 기합과 함께 있는 힘을 다해 내리친다. 퍽 소리와 함께 블록이 주저앉는다.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호성이 터지고 부모들은 눈물을 글썽인다. 심사자는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이 넘친다. 난 이 순간이 이들이 새로이 태어나는 순간이라 생각한다. 작은 자아를 깨뜨리고 스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먹으로 촛불 끄기가 있다. 세 개의 촛불을 연달아 꺼야한다. 간단한 테스트지만 또 하나의 좋은 도전이다. 한 번에 시원하게 팍 꺼지면 좋겠지만 이미 지쳐버린 상태에선 쉽지 않다. 꺼지지 않는 촛불과 씨름하는 이들을 보면 보는 이들의 마음이 안타깝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 기어이 촛불이 팍 허공 속으로 꺼져 사라지고 나면 기쁨은 또 배가 된다. 심사자, 사범, 가족, 친지 친구들 모두가 기쁨 속에서 하나가 된다. 연대의식이란 서로 힘든 과정을 함께 겪었을 때 깊어지는 법이다.

 ▷ 다음호에 계속

이정규 사범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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