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를 주먹으로 쳐도 득점이 되고, 이건 태권도가 아니라 복싱이야.”(외국의 한 감독)
“대회를 주최한 WTF는 뭐하는 거야. 행정 공백이 대회를 엉망으로 만들었군.”(한 태권도 관계자)

지난 4, 5일 춘천에서 열린 전자호구 국제태권도대회가 열리는 동안 대회에 참가한 선수, 감독들과 태권도인들은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지난 4일 김세혁 삼성에스원 감독(왼쪽)이 전익기 경희대 교수(오른쪽)와 전자호구 센서(감응장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 교수는 현재 WTF 경기-심판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날 대회는 세계태권도연맹(WTF)과 전자호구 업체에 매우 중요한 대회였다. 이번 대회의 평가에 따라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전자호구를 도입할 수 있을지 판가름이 나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 사용된 전자호구는 지난해 9월 WTF가 공인한 라저스트(LaJUST)사의 몸통호구 및 머리보호대였다.

그러나 전자호구 경기를 지켜본 대다수 태권도인들은 “기대 이하”라는 반응을 보였다. 심판 판정의 공정성 및 객관성 확보를 위해 전자호구를 도입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했지만, 전자호구의 기술적인 결함이 개선되지 않아 ‘시기상조’라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었다.

따라서 베이징올림픽에 전자호구가 도입되지 않은 1차적인 원인은 전자호구 관련 업체, 즉 제조사에 있다. WTF의 한 관계자는 “몸통호구의 경우, 기술적인 결합을 완벽하게 개선했다고 했는데, 이게 뭐냐”며 실망스러워 했다. 특히 몸통호구에 비해 기술적인 결함이 더한 머리보호대를 그대로 사용한 것도 비판 여론을 확산시켰다.

WTF도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 끝난 후 “베이징올림픽 때 전자호구를 도입하겠다”고 공언한 조정원 총재의 의지는 사무처 갈등과 행정 공백으로 인해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전자호구 도입에 따른 경기규칙을 만드는 일에 소홀했고, 공인 업체인 라저스트(LaJUST)사와의 의사 소통 및 협력체계도 미흡했다. “WTF와 전자호구 개발업체가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완성된 제품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한 정국현 한국체대 교수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도 문제가 많았다. WTF 사무처의 내부 문제로 준비가 안되다 보니 대한태권도협회와 강원도태권도협회의 도움을 받아 성의없이 열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 총재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4억 원의 예산을 투자한 ‘전시대회(展示大會)’의 전형이라고 혹평한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국제 스포츠 기구’라는 WTF의 명성에 걸맞지 않을 것이다.

심판들도 이번 대회가 혹평을 받도록 부채질을 했다. 얼굴 공격의 득점 여부를 판정하기 위해 투입된 2명의 부심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경기 내내 로봇처럼 앉아 있는 게 임무냐”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였다.

TV로 대회가 중계될 때는 심판들의 함량 미달이 여실히 드러났다. 머리보호대 센서가 득점을 적용하지 않았다면 심판들이 바로 잡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식으로 방관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대회는 전자호구 제조사의 기술 보완 미비, WTF의 대회 준비와 운영 미흡, 함량 미달의 심판들로 인해 실패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서성원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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