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7.10 금 10:44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
[해외 한인 태권도 사범 수기 공모] 좌충우돌 이정규 사범의 미국 정착기 (12)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아내
햄버거 한 개 차에서 나눠먹는 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외식
  • 이정규 사범
  • 승인 2007.03.05 11:07
  • 호수 536
  • 댓글 0

대뜸 한다는 말이 예전에 고명한 사범에게 직접 무술을 배운 적이 있다며 이름을 대는데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이름이었다. 내가 아는 게 짧아 들어 본 바가 없다고 했더니 인상이 구겨진다. 현재의 사범님 성함은 이렇다고 들이대는데 역시 들어본바 없다고 했더니 뭐 이런 게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미안하다. 내가 미국 온지 얼마 안돼서 그렇다. 그건 그렇고 그 장대는 뭐냐고 물으니 자기가 한 수 보여주려고 가지고 왔단다. 그러면 한 수 보여주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제 집 인냥 성큼성큼 도장 한 복판에 들어와서 폼을 잡더니 고함을 지르며 휘두르는데 제법이었다.

이정규 사범 부인 김시현 씨.

군말 안하고 다 보아주었다. 한참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더니 숨을 헐떡이며 다 보였다고 하는데 여전히 눈에 각은 안 풀고 있다. 무술한 사람들은 저마다 자존심이란 게 있는데 이게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자기가 배운 것만 정통이요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감사하게 잘 보았고 좋은 기술이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그런데 내가 배운 것하고는 조금 틀리는데 그 장대 좀 빌릴 수 있겠느냐 그랬더니 건네준다. 나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혼자 재미 삼아 하던 재주가 좀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머리통 날려 버릴 기세로 휘둘러 댔다. 도장 안에 붕붕 소리가 가득 하도록 휘둘렀다. 또 오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엄포였다. 흠짓 놀라는 눈빛이 점점 비 맞은 강아지 꼴로 불쌍해졌다. 장대를 건네주며 정중히 인사를 하고 다음에 오실 땐 이런 거 흉폭 해 보이니까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알았다고 하더니 녀석이 인사를 꾸벅하고는 바람같이 사라졌다.

항상 돼먹지 못한 녀석들이 시비 걸고 다닌다. 다신 안 오겠지 하고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나타나서 다짜고짜 주머니에서 지폐뭉치를 탁 꺼내놓는 것이었다. 이게 뭐냐고 했더니 자기도 이 도장 다니려고 한단다.

말하는 태도며 눈에 각 잡고 있는 꼴이 맘에 안 들었다.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난 널 받아줄 생각이 없다. 네 불손한 태도가 맘에 안 든다. 난 아무나 돈 냈다고 받아주는 장사꾼이 아니다. 우리 도장 오고 싶으면 그 태도 먼저 고치고 와라.

그랬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한참을 째려보다가 그러면 이거 지난 번 배운 수업료라 생각하고 받아 달라며 돈을 놓곤 돌아선다. 어림잡아 몇 백 달러는 되어 보이는데 순간 맘이 흔들렸다. 그 땐 일불이 아쉬울 때였다. 하지만 불러 세웠다. 이런 돈은 관심 없으니 가져가라. 그리고 다신 오지 말라고 했다. 녀석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돈을 다시 챙겨들고 나간다.

그날 밤 내내 그 돈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냥 모른 척 받을 걸 그랬나? 사람 배고프면 불쌍해진다는 게 실감나던 밤이었다. 고작 몇 년 전이지만 그때만 해도 낮엔 학교 오후엔 도장 그리고는 집에서 쉬래도 청소 돕겠다고 새벽까지 따라다니던 아내를 차에서 재우며 다니던 때였다. 눈물 나던 시절이었다. 

정말 없을 땐 김치는커녕 소금 찍어 밥 먹던 때도 있었다. 아내는 그나마 소금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면서 같이 먹으니까 맛있다고 했다. 공부하랴 태권도 하랴 나 따라 다니며 청소하랴 지칠 대로 지친 사랑스런 아내에게 햄버거 하나 맘 놓고 못 사주던 때였다.

도장 수업 끝내고 밤에 가다보면 이미 허기가 진다. 그럴 때면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햄버거 하나 먹고 싶은데 그래도 되냐고. 그러면 큰 맘 먹고 하나 시켜서 둘이 차에 앉아 나누어 먹었다. 아낸 참 착하다. 번번이 햄버거 하나 통채로 못 사주는데도 “자기는 어쩜 내가 뭐 먹고 싶다면 싫단 말 한 번 안 하냐”고 좋아했다. 자기는 햄버거 하나 혼자선 다 못 먹는다나. 그래서 나랑 같이 나누어 먹어야 딱 맞는다고...

그럴 때면 말은 못했지만 이런 나를 믿어주고 따라주는 아내가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이다.

지금 생각해도 둘이 나누어 먹어서 그랬는지 맛은 참 좋았었다. 그 햄버거 하나가 당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외식이었다.

● 터프가이 경찰들 그들은 실전을 원한다.

내가 만난 미국 사람들은 직업 정신이 투철했다. 직업의식이 투철한 사람으로 경찰이  빠지지 않는다. 하나같이 터프가이다. 특히 미국 경찰은 군인보다 더 총격전에 가까이 있다. 갑작스런 총기난사가 빈번한 미국에선 진짜 누가 적인지 확인이 쉽지 않다.

그래선지 이들은 무척 예민하다. 내가 가르쳤던 덕(Doug)이라는 경찰은 가슴 한 복판에 총상이 있었다. 하필 방탄조끼 바로 위에 맞아서 방탄복의 혜택을 못 보았단다. 죽다가 살았단다. 동료하나는 측면에서 날아온 총알에 맞았는데 이것도 방탄복 바로 위 겨드랑이 쪽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에 현장에서 순직했단다.

그러니 방탄복이 곧 생명보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상황이 발생하면 죽기 살기로 싸운다. 호신술에 특히 관심이 있는 계층이다. 경찰 규정상 체포를 위해 잡는 것은 허용되지만 타격은 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규정은 규정이고 목숨이 오가는 위험한 상황에선 제2, 제3의 무기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부분 허리춤의 권총 말고 발목이나 등 쪽에 권총 하나를 더 숨겨 둔다. 사격실력 또한 대단하다.

꼭 이들이 아니더라도 항상 총기와 도검에 노출 된 생활 때문에 권총 호신술이나 대검 호신술을 가르치면 누구나 무척 좋아한다. 실력 있는 사범으로 인정받는다.

하루는 덕(Doug)이 흥분한 표정으로 도장에 왔다. 오늘 교도소에 들렀는데 덕이 잡아넣었던 녀석이 자기를 알아보더니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 태권도 배운 사람이니 건드리지 말고 좋게 말할 때 물러서라고 했단다. 그랬는데도 녀석이 니가 어쩔 건데 하며 갑자기 달려들었다고 했다. 덕이 순식간에 상대 손을 비틀어 버렸는데 손목이 돌아가 버렸다고 했다.

난 깜짝 놀랐다. 그래도 그렇지 사람 손목을 꺾어 놓으면 어쩌냐고 했더니 여긴 범죄자들이 정신 이상이 많아서 교도관이나 경찰을 공격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칫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수업 중에 체험담을 발표를 시켰다. 현직 경찰이 신나서 어제 배운 걸 오늘 써먹었다고 하며 태권도가 실제 상황에서 진짜 쓸모가 있다고 증언을 하니 그날 수업이 얼마나 신나고 박진감 넘쳤겠는가.

▷ 다음호에 계속

이정규 사범  dssim22@paran.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관련기사 icon[해외한인 태권도사범수기공모] 좌충우돌 이정규 사범의 미국 정착기 (11) 온 몸으로 가르치는 태권도 icon[해외한인 태권도사범수기공모] 좌충우돌 이정규 사범의 미국 정착기 (10) 치카마우강 첫 도장을… icon[해외한인 태권도사범수기공모] 좌충우돌 이정규 사범의 미국 정착기 (9)
"Made in Korea!"
icon[해외한인 태권도사범수기공모] 좌충우돌 이정규 사범의 미국 정착기 (8)
알래스카 송판 진짜 세다
icon[해외한인 태권도사범수기공모] 좌충우돌 이정규 사범의 미국 정착기 (7)
I don't want to(그러고 싶지 않다)
icon[해외한인 태권도사범수기공모] 좌충우돌 이정규 사범의 미국 정착기 (6)
"야! 네놈들 다 덤벼봐"
icon[해외한인 태권도사범수기공모] 좌충우돌 이정규 사범의 미국 정착기 (5)
식칼에 사과 꽂아 들게 하고 맨발로 돌아차서 박살
icon[해외한인 태권도사범수기공모] 좌충우돌 이정규 사범의 미국 정착기 (4)
교회청년회원들을 모아 시범단 조직
icon[해외 한인 태권도 사범 수기 공모] 좌충우돌 이정규 사범의 미국 정착기 (3)
미국 입국때 공항에서 봉변 잇따라, 검은 봉지 안에서 풍겨오는 순대 냄새
icon[해외 한인 태권도 사범 수기 공모] 좌충우돌 이정규 사범의 미국 정착기 (2)
리틀 도쿄 뒤흔든 태권도 격파
icon[해외 한인 태권도 사범 수기 공모] 좌충우돌 이정규 사범의 미국 정착기 (1)
국제 사범 1호부터 초짜까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