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태권도계는 태권도 역사를 새롭게 정립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발 맞춰 태권도 원로인 백준기 오도관 총본관 명예회장의 ‘군 태권도 비사’를 4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주>

태권도 교관단으로 월남에 온 후 내가 한 일은 사이공 중앙에 위치한 대한민국 주월대사관의 앞뜰에서 돈 한 푼의 홍보비도 쓰지 않은 채 태권도 연무시범을 하는 것이었다.

백준기 태권도교관단 단장이 연무시범 중 발격파를 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언론매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연무시범은 태권도의 우수성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64년 10월, 투둑에 있는 월남군 보병학교와 나트랑에 있는 해군사관학교, 그리고 달라트에 있는 육군사관학교 등 3개 지역으로 분산 배치된 교관들은 우리말 구령으로 ‘태극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태권도 교육이 이뤄졌다.

보병학교에서는 교관단장인 나를 비롯해 교관 4명이 100명의 월남군 태권도 교관요원들과 함께 일과가 끝난 후 저녁시간을 활용해 민간인 800명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나트랑에서는 이대희, 박양규, 정주환 대위가 250명의 해군 생도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고, 달라트에서는 유형선, 임승해, 김수련 대위가 850명의 육사 생도들과 민간인 200명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나는 3개 지역을 순회하며 태권도 교육을 지휘했다.

그런데 월남인 피교육자들에게 태권도 용어를 영어로 가르칠 것이냐 우리말로 가르칠 것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태권도 기술만을 보급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우리의 얼과 혼을 심는데 더 큰 뜻이 있다는 의견이 많아 모든 구령과 용어를 우리말로 통일했다.

처음에는 교관들이 무척 힘들어 했다. 구령과 함께 똑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등을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큰 어려움은 태권도를 가르치는 교관들에 비해 태권도를 배우려는 민간인들이 너무 많아 무한정 수련생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실정이었다.

사관학교 정규수업이 끝나면 일과 후 다시 지역별로 공설운동장을 이용해 태권도를 배우겠다는 수련생들을 모아 놓고 태권도를 가르쳤지만, 날이 갈수록 지원자들이 늘어나 인원수를 제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본국 합참당국에 교관 보충 상신을 하였다. 즉 교관들을 장교로 국한하지 말고 사병 출신의 교관을 충원해 달라는 건의를 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붕타우에 있는 월남공수특전단장이 나를 찾아와 자기네 공수부대에 태권도를 가르치는 교관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간곡한 요청을 뿌리칠 수 없어서 나트랑에 있는 이대희 대위에게 붕타우를 책임지라고 당부하고, 이동외과 병원장 이형수 중령과 협의해 병원경비중대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사병 중 태권도 유단자인 홍도 중사와 오태용 하사를 차출해 교관으로 임명해 교관은 10명에서 12명으로 늘어났다.

이런 일도 있었다. 월남군총사령부 군수참모였던 욘 장군은 자기 아들 세 명을 직접 데리고 와서 나의 제자로 키워줄 것을 간청했으며, 교관들의 위상이 높아지자 지방 유지들은 우리 교관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것을 ‘권세의 심벌’로 여겼다.

초대 태권도교관단은 1965년 11월 6일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귀국했다. 나는 귀국한 후에도 월남이 자체적으로 태권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월남태권도협회가 결성되도록 앞장서 4개 지역에 오도관과 청도관, 지도관, 송무관, 정도관 등의 지관을 설치하여 주었다.

백준기 원로(베트남 초대 태권도 교관단장)  wtk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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