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찾아오는 새해를 맞게 되면 지난 일을 되새기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된다. 

2005년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한 해였다. 김운용 총재 이후 태권도 행정단체가 어수선한 가운데도 조직이 정비되고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간 논란이 분분했던 태권도공원 조성사업도 큰 가닥이 잡힌 것 같다.

새 천년을 맞아 5년이 훌쩍 흘러간 이 시점에서 정작 우리 태권도인들은 어떤 미래를 구상해볼 것인가? 과도기적 변화와 개혁 상황에서 등장한 새 행정 수장들의 미흡한 리더십에 악화된 경제와 사회적 여건까지 겹쳐 태권도계가 퇴조할 것인가? 아니면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건전한 물결이 과거의 불합리를 개선하고 진일보하는 기틀을 마련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태권도의 미래는 태권도인의 문화적 역량 발휘에 달려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태권도계에서 미흡한 수준에 불과한 문화적 인식의 기틀을 세우고 공고히 하기 위해 ‘태권도 문화적 인식과 실천 활동의 필요성’을 주창하고자 한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로 간주된다. 즉 문화적 자원과 능력이 개인과 조직, 나아가 국가의 번영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지난 세기 동안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곧 그 나라의 힘을 의미했으나 21세기는 문화가 개인이나 집단, 또는 한 국가의 힘을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과거에는 경제가 문화를 창출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문화가 경제발전을 견인하고 성장시킨다. 선진국은 문화 상품의 파급 효과와 부가가치, 경쟁력을 일찍이 인식하고 음악, 미술, 건축, 영화 등 문화 종목 전반에 걸쳐 세계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태권도는 무한 부가가치 지닌 문화상품

태권도는 그간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자부심을 고양하고 막대한 경제적인 이득을 창출해온 무예스포츠로 그 위상을 떨쳐왔다. 아울러 수도 셀 수 없는 벽안(碧眼)의 친한파 외국인들을 양성한 한류(韓流) 문화의 원조이며 장차 무한한 부가가치를 지닌 문화 상품이다. 아마 한국에서 태동한 온갖 문화종목을 통틀어도 태권도처럼 글로벌(global)한 아이템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권도계의 문화 인식이나 관심도는 아직 요원하다. 그 단적인 예로 태권도 관련 자료를 보존하고 전시하는 국기원 태권도기념관의 부실성을 들 수 있다. 삼십여년전 태권도 겨루기 경기 발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대나무 몸통보호대조차 확보하지 못한 실정이다. 태권도계의 미흡한 문화 인식과 수준이 이대로 간다면 태권도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 흔한 듯하면서도 소중한 태권도 문화자료가 흔적도 없이 사장되어 버린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면 ‘태권도 문화’란 무엇인가? 태권도 문화를 언급한 이상 그 말뜻도 살펴보자. ‘태권도 문화’란 말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정작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는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 태권도 문화란 말을 흔히 사용하면서도 깊이 있게 새겨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사실 문화(culture)란 간단히는 “어떤 집단이나 사회의 구성원들의 사고와 행동 등 생활 방식이나 내용, 그 소산(所産)” 이라고 한다(프란츠). “후천적 역사적으로 형성된 외면적 내지 내면적 생활 양식 체계이며 집단의 구성원에 의해 공유되는 것이다.”라고 미국 학자 클라이드 (Clyde)가 덧붙였다.

내용 면에서는 첫째가 집이나 음식, 생활용품 등과 이를 만드는 기술 즉 물질적인 것이다. 둘째는 지식이나 신념, 가치, 태도 등 관념(정신)적인 것을 말한다. 셋째는 예절이나 관습, 법, 도덕 등 규범적인 것이 있다.

필자는 포괄적이면서 일상적인 의미에서 태권도 문화를 개념짓고 싶다. “태권도 문화(Culture of Taekwondo)란 태권도인들의 활동이나 생활 방식이며 그 행동의 소산이다”. 아울러 태권도에 함장된 유, 무형의 가치성을 발현시키는 욕구이며 바람직한 태권도 문화유산을 창출하는 근원이 된다.

필자는 태권도 문화는 ‘핵심문화’와 ‘부속문화’로 둘로 나누고 양자의 유기적인 융합과 상호 발전이 촉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태권도 핵심문화’란 태권도인들의 활동 현장과 생활 방식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가장 우선적이며 중심적인 과제이다. 예컨대 태권도 기술수련 방식이나 정신 수양, 가치관과 사고 및 행동 양식에서 비롯되어 경기장 문화라든지 태권도장 지도와 경영 문화, 조직 문화 등 태권도 전반에 걸쳐 있다. 태권도 지도자나 행정가, 학자, 선수, 수련자들이 주 구성원이며 태권도 문화의 주도자이다.

부단한 수련으로 인간의 정신적, 신체적 강인함이 표출된 기술적 역량이나 바람직한 성품과 인격 도야, 판정 시비나 폭력이 부재한 건전한 경기 문화 (필자는 근시기에 채택될 것으로 보이는 전자호구 도입을 적극 찬성한다)의 확립, 수련자의 태권도 실력과 체력 향상을 바탕으로 예의, 자신감, 집중력 등 인성교육이 확대된 태권도장 교육 문화의 정착 등 이 모든 것이 태권도의 근간을 이루는 ‘태권도 핵심문화’이다. 태권도 핵심 문화가 바람직하고 긍정적으로 개선되고 진보해야 한다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국기원 태권도기념관의 부실

다른 하나는 ‘태권도 부속문화’의 진작이다. 태권도 핵심문화 유지에 급급하여 소흘히 해 왔던 부분이 바로 부속문화이다. 건전한 핵심문화의 토대 위에 성장할 수 있는 부속문화에도 각별한 관심과 장려 방안을 본격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태권도 부속문화’란 두 가지 부분을 담고 있다.

“첫째는 태권도나 태권도 활동에 연관된 부수 행사를 일컫는다. 둘째는 태권도 관련 기념물 또는 문화(예술)작품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태권도 대회에서 겨루기 경기 자체는 ‘핵심문화’로 규정되며 활쏘기, 말타기, 격파체험, 태권도 사진, 붓글씨, 그림작품 전시, 전통문화공연 등 부수 행사는 ‘부속문화’가 된다. 태권도 부속문화면에서 최근에 몇 가지 고무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

태권도 부속 문화로서 성공작은 최근에 각광받는 태권도 공연예술을 들 수 있다. 수년전 영국 에딘버러에서 현지인들로부터 인기를 끈 ‘태권다이야몬드’ 공연, 최근 1,000회의 공연 기록을 돌파한 공연물 ‘점프(Jump)’, 세계적 연출가 빅토르 크라메르가 태권도를 소재로 연출한 ‘더 문(The Moon)’ 등이 두각을 나타낸 태권도 공연문화로서, 작품성과 흥미성을 만족시키는 자생적인 관람 문화로 정착한 괄목할만한 현상을 보였다.

또 ‘강태풍’, ‘로봇태권브이’ 등 TV 애니메이션, ‘이방인’,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태권소녀’,‘돌려차기’ 등 태권도 소재 영화, ‘우짜짜태권붐’, ‘태권특급’, ‘어린이태권왕’ 등 여러 종류의 문화 관람물이 제작되어 바람직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두번째 태권도 부속문화 분야로는 태권도를 소재로 한 그림, 글씨, 사진, 문학, 가요, 공예, 조각, 건축 등 문화와 예술을 망라하는 기념물이다. 작가의 창의적이고 미적인 가치나 희귀적 가치성을 함축한 태권도 소재의 모든 작품이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태권도장에 쓰는 수련용품, 홍보포스터, 캐릭터, 열쇠고리, 인형, 악세사리 등의 생활용품이 태권도 문화 상품이자 자료가 된다.

태권도가 세계 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지식, 교육, 행정 뿐 아니라 관련 문화를 개발하고 널리 홍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태권도 부속문화는 핵심문화와 더불어 태권도 보급과 발전을 촉진하고 태권도의 저력과 바탕을 심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장기적 안목으로 문화적 관심의 증대와 재정의 투자가 따라야 한다. 장차 조성될 태권도공원은 당연히 태권도 문화 중심지로서 기능과 역할을 해야한다.

지난 1996년, 한복, 김치 등과 더불어 한국문화 10대 상징 C.I.(Corporate Identity)에 포함된지 10년째를 맞은 태권도. 장차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우뚝서야 할 태권도의 미래는 태권도인의 문화적 마인드의 발휘에 달려있다. 아울러 태권도 문화 진작을 위해 태권도 행정 당국의 주도적인 역할의 증대와 장려책이 꾸준히 시행되어야 그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영선 연세대학교 대표 강사  wtk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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